2년전 자료를 복사했습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몇년전 제사상에 조카가 과일중 복숭아를 왜 안 올리는지를 물어볼때 대답을 못했고, 조기를 올리며 머리를 동쪽으로 놓았다 서쪽으로 놓았다 하다가, 다시 배가 어느쪽으로 향해야하지 하던 생각이 나서 인터넷을 여기저기 검색해 보았는데,
두서없더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고 올립니다.
예서(禮書)에 의하면 ‘제왕(帝王)은 하늘을 제사지내고 제후(諸侯)는 산천을 제사지내며, 사대부(士大夫)는 조상을 제사지낸다.’고 했다. 이것은 온 세상을 다스리는 제왕에게는 천지(天地)가 절대자이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제후에게는 산천(山川)이 절대자이며, 그렇지 않은 사인(私人)에게 있어서의 절대자는 조상(祖上)이라는 데에 연유한다.
인간이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까닭은 효(孝)를 계속하기 위함이며, 효란 자기존재에 대한 보답이다.
예(禮)를 모든 것의 근본으로 하는 성리학(性理學)에 바탕을 둔 《주자가례》는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우리의 조상숭배(祖上崇拜) 사상을 보편화시키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고, 가신(家神) 신앙으로 승화되어 백성들의 사고 구조에까지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제사의 근원은 먼 옛날에 천재지변(天災地變), 질병(疾病), 맹수(猛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근세에 와서는 유교사상으로 조상에 대한 존경과 애모의 표시로 변하게 되어 가장마다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봉사대상(제사대상)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 왔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관료직급의 품계에 따라, 4대,3대,2대조상을 제사지내고, 평민은 부모제사만 지냈다.
그러나 그 당시 7품 이상의 관원은 불과 20% 미만으로 일반국민의 80% 상당의 인원이 7품 이하의 관원이나 서인이었기 때문에 전 국민 중 대부분이 부모제사만 지낸 셈이다. 그러하던 것이 한말 갑오경장(고종 21년) 이후로 구시대의 계급사회가 무너지자 반상의 구별없이 사대부의 예절을 따라 사대봉사를 해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사의 종류는 기제(忌祭), 차례(茶禮), 묘제(墓祭)의 세 가지로 나눈다. 기제는 해마다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이고, 차례는 음력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제사이다. 묘제는 한식과 추석 때에 산소에 찾아가 음식을 차려 놓고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이 밖에도 가족, 친지와 더불어 사회적 관계에 있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추도식이나 위령제가 있다.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제정하였는데, 제례는 기제 및 명절차례로 구분되고 봉사는 제주로부터 2대조까지로 하고 성묘는 제수를 마련하지 아니하거나 간소하게 한다고 공표되었다.
자손들이 대부분 흩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된 오늘날 새로운 각도에서 제사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사란 조상에 대한 후손들의 공경심과 효심을 나타내는 의식이다. 따라서 자라나는 자손들에게는 자신의 근본을 깨닫게 할 수 있으므로 그 의미는 여전히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조상들에게 정성껏 예를 올리는 것은 자손의 당연한 도리이지 미신적인 차원에서 냉대받거나, 안 좋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형식과 복잡한 절차를 따르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제사의 참 의미를 새기고 현대에 맞는 의식절차에 따라야 할 것이다.
제사상 차리는 진설법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다르며 옛 학자들의 주장도 한결 같지 않다.
참고로 조(대추)는 씨가 하나로 나라 임금을 뜻하고 율(밤)은 세 톨로 삼정승, 시(감, 곶감)는 여섯개로 육방관속, 이(배)는 여덟개로 八도 관찰사를 뜻함으로 조율시이(棗栗枾梨)의 순서가 옳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더 많다.
홍동백서를 따르는 가문은 대추가 가장 우측이다.
제사상을 차릴때 가장 혼동되는게,
- 국그릇이 어느쪽인지
- 어동육서
- 생선머리가 어느쪽인지
- 생선배가 어느쪽인지
- 떡은 어디다 놓지,나물은
- 술따르고 절 해야 맞나 등등
집집마다 다르고 간소화하면 되는데,
요즘엔 핸드폰이 있어 편하게 따르면 되니 문제 없고, 정성만 있으면 무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사가 끝난 후 음식을 나눠먹는 이유는 조상님이 주신 복을 후손들이 나눈다는 의미가 있다. 제사행위 자체가 조상의 덕을 기리고 조상께서 후손에게 복을 내려 달라고 청하는 기복신앙의 일종이다. 따라서 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음으로써 조상님이 주신 복을 후손들이 나누어 먹는 결과가 된다.
다만 제사상 진설시 피하는 과일은 복숭아이다.
2년전 조카가 장인어른 제사때 왜 복숭아는 안놓냐고 할때, 벌레먹어 그렇나하고 말문이 막혀 대답을 못해 인터넷을 한참 뒤졌더니,
중국신화에 따른 영향,무속신앙에 따른 민속영향이었다.
복숭아를 제례용에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복숭아의 축귀력이 조상신의 출입을 막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좀 더 현실적으로 볼 때에는 복숭아의 생김새가 여성의 젖가슴과 엉덩이를 닮고 있어 이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복숭아는 오목(五木) 가운데 가장 정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시기에 봄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양기 충만한 나무이기 때문에 귀신과 같은 음기를 쫓는 힘이 강하다고 여긴 것이다.
신화로는
기원전 4세기경에 씌여진 산해경의
해와 달의 신화에 관련된 신화이다.
하나라 요임금때.
옥황상제의 아들중 태양이 10명 있었는데, 하루에 한명씩 마차를 타고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넘어가야하는데, 어느날 10명이 한꺼번에 떠올라,
땅이 메마르고 곡식이 말라 사람이 살 수 없어, 요임금이 하늘에 빌어 천신인 예가 지상에 내려와 활로 9개의 태양을 떨어뜨려 안정을 시켰는데, 인간들은 좋아했으나 아들을 잃은 천제가 노해 그의 아내인 항아와 예를 지상의 인간세상으로 추방하였다고 함.
우울증에 시달린 마누라 때문에 전설의 산인 곤륜산에 올라 서왕모에게 빌어, 천도복숭아로 빚은 환단을 하나 얻어 왔는데, 혼자먹으면 신선이 되어 천계를 갈 수 있고 둘이 나눠먹으면 불로불사할 수 있는 환단이었음.
다시 신이 되고 싶은데
혼자 먹자니 그렇고, 나눠먹자니 그렇고 해서
마느라에게 맡겨 놓았는데, 어느날 다시 괴수들이 인간세상을 괴롭혀 이를 활로 처치하려고 간 사이에, 항아가 몰래 먹고 천계로 갔다가 천제의 노여움에 부끄러워 달에 숨었다고 함. 그이후 월궁항아라고 한시에 나타나고, 사극에도 미인으로 항아라는 이름이 많고,달표면이 거친이유가 달에 떨어진 항아 피부가 두꺼비피부로 변했기때문이라는 중국설화도 있음.
항아가 떠난 이후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있다가, 오직 제자만 키우며 지냈는데 , 제자는 10여년후 모든 기술을 습득했는데도 활의 최고는 오직 스승 예만 사람들이 알아주길래, 스승만 사라지면 자기를 알아주리라 생각하고, 대문 뒤에 숨어있다 대추나무 몽둥이로 뒤통수를 때려 스승을 죽였다.
예가 죽은후 사람들은 예를 귀신들중의 왕으로 섬기었는데, 죽어 귀신의 왕이 된 예는 항아가 훔쳐간 복숭아로 만든 환단과 뚜드려맞아 죽은 복숭아몽둥이를 싫어하고 무서워해서 , 모든 귀신들이 복숭아를 싫어해 그이후 사람들은 조상신이 올 수 있도록 제사상에 복숭아를 안 올리고, 집안에도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렸을때 마루위 문위에 이상한 주사로 귀신그림과 호랑이그림이 입춘대길 그리고 가시나무와 함께 있었고 , 지금도 고택이나 고궁에도 이게 있고, TV 에도 연말연초면 그런 화면들이 나오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속으로 쓸데없는 미신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것도 이제야 알고보니 복숭아 나무 민속과 관련 있더군요.
산해경에 따르면 동쪽의 섬에 가지와 잎사귀가 3천리에 걸친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낮게 드리운 가지에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이 있었는데, 수문장으로 신이 둘이 있다가 인간에게 해가되는 귀신이 오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로 쏴 죽인후 호랑이의 먹이로 주었다고 함.
그후 민속의 영향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신령스러운 복숭아를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철이라 황도통조림이라도 하나 사야할까 봅니다.
너무 길어 지루하셨다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
즐거운 설 명절을 맞이하여,
정겨운 가족들과 행복한 설 잘 쇠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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