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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대한 단상

류종중 2021. 9. 18. 08:03


2년전 자료를 복사했습니다.



네이버뉴스를 보다가

"5.18 유공자란 괴물집단이 세금축내"하는  기사를 보고, 뭔소린지 하고 기사를 클릭했더니, 세월이 가도 변하지않는 것들도 많구나하고, 이것저것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았습니다.



5.18을 미국 유럽등지에서는 Gwangju Massacre (광주대학살)이라고 하고,



호주 캐나다 영국과 아시아권에서는 Gwangju Uprising (광주(민중)봉기)라 하며,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Gwangju Democration Movement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입법부,사법부,행정부가 객관적으로 인정하고,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당시의 기록물이 보존되어 있고, 피해자유족들이 생존해 있으며, 따라서 역사적 및 사회적 평가가 모두 끝난 상태이다. 또한 국방부도 북한의 개입은 없다고 1980년대에 이미 인정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북한군특수부대에 의한 폭동을 주장, 그것도 국회에서 공당의 의원들에 의해 공청회가 실시되고 왜곡된다는게 어처구니 없어,   무시해버려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



김영삼전대통령에 의해 정리된 하나회의 막내기수인 지만원을 중심으로 자기들 책임회피를 위해 일부 12.12 신군부세력에 의해  2012년 인터넷의 발달로 확산되더니, 2013년 TV 조선과 채널 A에서 계속 주장하고,



전두환 전대통령은 몇년전 동아일보기자와 인터뷰에선 북한특수부대개입설 그런 주장이 있다는 것도 처음 듣고, 지만원부류와 같이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니, 회고록엔 책임회피위해 북한특수부대개입설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일반인들의 10%가 그대로 믿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론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거짓말을 할리 없다하고, 방송이 거짓을 보도할리 없다고 한다.



5.18유공자괴물집단이 세금축낸다고 하길래,

5.18사상자를 조회해보았다.



88년도 정부공식자료엔 사망 191명,부상 852명이라고 하였다가,

95년도 국방부,서울지검공동조사에 따르면 ,



인적피해



군인 23명 사망,경찰 4명 사망,군경 253명 부상,



시민군 165명 사망,76명 실종,3,515명 부상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구속 및 구금등의 부가피해자가 1,589명이라고 한다.



행방불명 신고한 사람은 많은데 정부가 공식인정한 숫자가 적어서 암매장 의혹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모든 희생자가 원통하고 억울하지만, 대부분의 군인과 경찰의 희생은 어처구니가 없는 사례이다.



군인 23명 사망은 최초 21명 사망이라고 발표했다가 부상으로 인한 사망자가 늘었나 보다.

최초 사망자 21명중 19명은,

광주에서 어두운 새벽에 화순으로 피신하는 군인과, 고개마루에서  방어위해 매복해 있던 군인,특전사와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간의 오인사격으로 인한 총격사망이다.



경찰 사망 4명은,

시내버스에 의한 추돌사고사이다.

언덕에서 내려오던 시내버스에 최류탄을 워낙 많이 발사해, 맵고 앞이 안보여 운전수가 쿵하고 뭔가 부딪히길래 벽에 부딪힌 줄 알고 , 버스 놔두고 도망갔다가 , 다음날 차를 찾으려 왔다가 붙잡혀 구속돼 사형선고을 받아 6~7년 복역하다, 그후 재심에서 대법원에서 무죄방면되었다.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3대운동이 4.19,부마민주화운동,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물론 6.10민주항쟁도 빼놓을 순 없다.

해마다 그날이 되면 언론에서 얘기해 알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직간접 당사자가 아닌 경우 세월이 흘러 관심이 없어져간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6.10민주항쟁당시엔 해병대소대장 복무중 머리빡빡밀고 계급장떼고 다시 몇개월 특수훈련받느라, 매일 바닷물속에서 추위에 얼어 기절안하려 발버둥치느라 바깥세상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물론 몇개월간 훈련 끝나기전엔 TV도 볼 수 없었지만. 그래서 6.10 민주항쟁이 무언지 지금도 느낌이 없고 그랬는갑다 한다.



4.19는 기록으로만 보고  배웠다.가끔 학창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경험담만 에피소드로 들었다.

그래서 이것도 느낌이 거의 없다.



부마민주화운동은 있었는지도 몰랐다가, 80년도 5.18직전 5월에  군사독재타도 데모를 독려하기 위해 앞에 나서서 애기하는 학생운동집행부로부터 처음 들었고, 언론통제가 심해 그 지역이 아니어서 뭐가뭔지 몰랐고,사실 관심도 없었고 그런가보다 했다. 그후 군복무중  5.18청문회를 TV로 보다가 ,당시 진압군으로 출동했다던 해병대선임하사로부터, 진압시 민간인이 때리면 무조건 맞아라했다는 대대장지침과 진압후 매일 부산시내를 빗자루로 청소했다고 하며 5.18당시 공수부대와 비교하는,민주화를 짓밟은  실상을 가끔 전해 들었다.



5.18은 직접 겪고 대학교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옮겨 다시 시작해야 했고, 피눈물이 뭔지 알고,  서울에 올라와 원통함을 하소연해도, 다들 관심도 없고 , 언론통제에 따라 세뇌 되어 남들로부터 전라도 빨갱이새끼 소리만 가끔 들었다.

그런 직간접 당사자였던 나도 벌써 당시의 감정은 거의 사라지고 뉴스화면을 보다가 울분에 가끔 울컥하고 눈물을 훔치곤 한다.



다들 관심없어 무관심해져가는 세월이 안타까운데,

왜 이런 쓸데없는 일들이 가끔 이슈화되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간다.

이게 뭔짓거리인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지만원 #전두환 #북한군특수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