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는 워낙 규모가 작아 진급이 어렵기도 하지만,
사령관이 진급대상자가 누가 누구인지를 잘 알아,
그에 관련된 해병대 사령관 비밀 수첩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릅니다.
87년도 어느날 장OO 6여단수색중대장이랑 소대장, 선임하사 몇명이 중대장실에서 몰래 저녁에 모여 훌라를 하는데,
86년도 해병대 장교진급에 대한 일화를 얘기를 합니다.
여단 지휘관회의시
여단장이 그 에피소드를 얘기를 해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해병대사령관 수첩에 장교 어느 누구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그 장교가 비리 혐의 문제가 있었는지,
칭찬할 건덕지가 있었는지를 적어 놨었는데,
해병대사령관이 오래된 내용이라 내용을 잊어버려,
그냥 그 이름이 메모된 장교를 좋은게 좋은 것이라고 소령으로 진급시켰다고 하면서,
사령관이 여단장에게 우스개 소리 비슷하게 여담으로 진급심사후 얘기를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수첩 비화가 몇달후 바로 수색중대장 본인에게 해당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비 해사출신인 ROTC 출신이라 진급이 어려워 ,
당시 수색중대원들이 1년동안 매일 과업으로 전복,해삼을 잡아서 상납을 했습니다.
수중탐색훈련,
수중침투훈련,
수중폭파훈련등 모든 훈련이 수중훈련 명목이었지만,
당시 김포수색대에서 수중폭파훈련을 하다가 사망사고가 발생한 이후로,
여단장 지시사항으로 폭파훈련이 금지되어,
폭파전단계 훈련만 실시하고,
모든 훈련을 수중탐색, 수중 침투훈련을 빙자한
전복, 해삼채취 훈련이었습니다.
해삼을 잡아 말리면서 소금간이 안되어 다 썩어서 버리기를 몇번 하는등 시행 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해삼을 잡아 말리면 라면박스 하나가 나오더군요.
여단장 사모님이 두세달에 한번 여단에 오시는데,
그때마다 두박스씩 보내야 했습니다.
한박스는 해병대사령관용이었습니다.
물론 살아 있는 전복 해삼은 1~2주일에 한번씩 바케스로 상납은 말할게 없었고,
중간에 참모장과, 사고 치는 놈들 봐달라고 헌병대에도 가끔 바께스로 상납을 했습니다.
87년 가을 11월에 공수교육 TO가 7명인가 9명인가 생겼는데,
어쩔라고 장교가 한명 TO가 생겨서 소대장인 내가 가야했습니다.
입교 1주일전
저녁에 갑자기 임종린 여단장이 부대를 방문하여,
부대건물 현관에 중대장, 소대장이 도열하여 서있는데,
여단장이 지휘봉으로 내 배를 툭 칩니다.
그래서
중위 류종중하고 대답을 했더니,
너 이번에 공수교육 간다며 하길래,
네,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걸음 옆으로 걷더니,
중대장에게,
중대장은 공수 교육 받았나 하고 묻더군요.
그랬더니,
중대장이
아직 못 받았습니다.
저희때는 고군반이 공수교육이 없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들은 여단장이
아니 수색중대장이 공수교육도 안받고 어떻게 지휘하냐, 너부터 갔다 와
하고 명령을 내리더군요.
그말을 듣는데
멍하기도 하고 ,나는 안가도 된다 하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추억거리나 경험으로 받았었으면 하고 생각도 합니다만.
바로 몇달전에
수색교육받느라고 ,
계급장 떼고,
머리 빡빡 밀고 몇달동안 개고생하고 힘든 훈련받았는데,
또 공수교육을 한달동안 간다는게 여간 신경쓰여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해병대 수색대는 당연히 모두 공수교육을 수료해야하는데,
84년 전두환대통령때 해병대 공수부대가 없어지면서,
육군공수부대에 가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교육을 받을 기회가 굉장히 적어,
부대원중 1/3정도만 받을 수 있어,
대원들은 서로 가고 싶어 소대장들에게 먼저 보내달라고 사정을 했었습니다.
당시 해병대 수색대원들 입장에서는,
한달 4주동안 공수교육을 가는 것을 휴가나 놀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공수교육에 비해 해병대수색교육이 훨씬 힘들어서 상대적으로 공수교육이 수월하기도 했지만,
첫째이유는 몸이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군들 입장에서 봤을때, 신병들이 논산훈련소에서 공수부대원으로 바로 차출되어 공수교육을 받을때는 무척 힘든 훈련이었을테지만,
해병대수색대원들은 이미 몇달동안 달리기등 체력적으로 몸이 만들어져 있는 상태에서 공수교육을 가면,
비행기에서 낙하하기전 육지에서 하는 훈련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부대생활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벗어 나고,
공수교육을 받았다는 자부심때문에 서로 먼저 갈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미쳤냐,
금방 제대할것인데 또 계급장떼고 가냐,
아! 미치겠네 하며 속으로만 짜증을 내고 있었던 시기여서 ,
공수교육을 안가도 된다는 기쁨을 혼자 속으로 즐기던 순간이었습니다.
당시 수색중대장은 85년에 고군반을 다녀왔었는데,
그땐 공수교육이 없었는데, 86년이후엔 대위 진급후 중대장이 되기전 받는 고군반때 전부 공수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 이후 중대장이 공수 교육 간 4주 동안에도 상납은 계속되었고,
그 시기 11월에 장교 진급심사가 있었습니다.
87년 11월말인지 12월초인지 중대장은 공수교육을 받으러 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여단장이 부대에 방문을 하셔서,
중대선임하사와 소대장들을 중대장실로 부르더군요.
진급심사 결과를 얘기하면서,
여단장님 왈,
내가 니네 중대장 진급시킬려고 사령관께 계속 얘기했더니,
6여단장 출신 최갑진해병대사령관 말씀이,
여단장이 부대 지휘관을 똑바로 모르고 지휘를 한다고 뭐라고 하셔서 엄청 당황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수첩을 꺼내서 보여주면서,
여단장 재직시 알게 된, 몇월 며칠 비위 내용이 적혀 있는데,
여단 본부앞 교육대장 근무시절 비위내용을 얘기하더랍니다.
교육대는 유격과 사격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곳입니다.
책임자는 중위입니다.
내용인즉슨
수색중대장이 81~82년도에 중위로 6여단 교육대장일때,
부대선임하사가 기름을 진촌 식당가에 몰래 팔아 먹고,
가끔 장교인 부대 책임자인 교육대장에게는 담배선물을 하면서 눈을 속여 기름을 팔아오다가 헌병대에 걸렸었다고 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몇년이 지나 수색중대장을 지금 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사격장 선임하사가 몰래 기름 팔아 먹고,
한 두번 담배 선물을 했는데,
교육대장은 그 내용도 모르고, 담배를 선물로 주니, 그져 선임하사가 잘 한다고만 생각했다고 합니다.
나이 먹은 선임하사가 어린 중위 교육대장을 갖고 놀았던 것이었습니다.
이 선임하사는 미꾸라지 양식을 사격장 앞 둠벙(조그마한 저수지)에서 계속했었는데,
몇년후 또 그것때문에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런 내용을 당시 여단장이 얘기를 하시면서,
니네들이 중대장 진급시킬려고 노력하는데,
미안해서 일부러 들렸다고 하시더군요.
물론 그 이후에도 계속 쭉 여단장이 바뀌고, 수색중대장이 바뀌어도 해삼 전복 상납은 계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이분 여단장이 사단장을 거쳐 사령관이 되셨는데,
이 내용이 이 사령관 수첩에도 당연히 기록되어 있었을 것이니, 당시 수색중대장은 그 이후에도 진급이 누락되었습니다.
하지만 6년후 김영삼대통령때,
하나회 숙청등 비사관 출신들의 진급우대 시기때,
당시 수색중대장도 진급대상시기가 무려 6년이나 지난후에 구제되어 소령으로 진급한후,
비록 임기제이기는 하지만 대령으로 예편하셨으니,
그나마 잘풀린 경우이다.
대부분 장교들은 진급대상시기 3년차까지는 진급기회가 있지만, 그 이후에는 거의 진급기회가 없는데,
이분은 제주도 ROTC 6기인데 앞뒤로 5~6년정도 선배나 후배중에 장기 복무자가 없어 구제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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