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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과 정부미

류종중 2022. 7. 1. 11:03

아마 1981년쯤으로 기억 된다.

시골에서 아부지가 쌀을 한푸대 소포로 보내주셨다.

자취하는데 돈도 떨어지는데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쌀 한푸대는 60kg이었다.

자취방에서 쌀 푸대를 짊어 지고 500m 정도 가야 쌀집이 있었다.

겨우 겨우 힘들게 쌀푸대를 짊어지고 쌀가게에 도착했다.

쌀을 산다고 해야 하나, 판다고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어렸을때 시골에선 쌀은 구하기 힘든 양식이어서
사람들이 부끄러워, 사고 파는 것을 거꾸로 사용했었다.

세월도 흐르고 여긴 서울이니까  그렇지 않겠지  하고,
그냥 쌀 팔려고 한다고  조심스럽게 눈치보며 말을 했다.

주인아저씨가 쌀푸대를 풀어 쌀을 보곤,

어디쌀이냐고 묻길래,

전라도 영광이라고 대답을 했더니,

내가 짊어 지고 온 쌀을
6,000원을 쳐주었다.

내가 불만스럽게 멀뚱히 쳐다 보니,

옆에 다른 쌀을 가리키며,
이천쌀이라며 8,000원이라고 하며,
내가 가져온 것과는 천지차이가 난다고 한다.

내눈에는 똑같은 쌀로만 보였다.

처음으로 이천쌀이 비싼쌀이라는 걸 알았다.

아 ! 우리 집 쌀로 지은 밥이 제일 맛있는데....

내가 젊은 학생이어서
나를 속이는 것 같았다.

안되겠다 다른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쌀푸대를 짊어 졌다.

쌀집이 또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다시 몇백m 구로시장쪽으로 갔다.
가리봉 5거리쪽에서 구로시장을 갈려면 언덕길을 넘어야 했다.

허리가 뿌러질 것 같아 몇번 쉬면서 ,아이고 죽겠다고 몇번이나 앓는 소리를 해야 했다.

드디어 발견한 쌀집에 들어서서 흥정을 했더니,
이집도 똑같았다.

안되겠다.
딱 한군데만 더 가보자.

구로시장안을 쌀푸대를 짊어 지고 또 무작정 돌아다녔더니,
다행히 100여m쯤 떨어진 곳에 마침 쌀집이 있었다.

그 곳도 가격이 마찬가지였다.

미련하게 1km이상을 쌀을 짊어 지고 이집 저집을 다녔다.

시골에서 보내주신 쌀을 팔고 , 정부미로 바꾸었다.

정부미는 2,000원이었으니,
4,000원차이가 생겼다.

그돈이면 한달 전철권를 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당시에 정부미로 밥을 지으면 냄새도 나고 색깔도 누리끼리 했었다.

과거에 정부미란 정부가 비상 상황(전쟁)을 대비해 저장해 놓은 공공비축미를 말하는데,
그때 당시에는 3년이 지난 쌀을 군대 급식이나, 시장에 판매를 했었다.

지금은 정부미란 개념이 바뀌었다.

정부미(政府米)는 대한민국 농림축산식품부에서 기초수급자 및 재난구호 목적과 국공립시설 등에 제공되는 쌀이다. 정부양곡 또는 나라미라고도 한다. 대한민국 정부의 국유물이며 상업적인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정부는 매년 우리 국민의 1년 쌀 소비량의 18% 수준의 공공비축미를 저장한다고 한다.
최대 5년 치를 저장한다고 한다.

오늘 지인으로 부터 받은,
영광쌀이,
전라남도 10대 쌀로 선정이 되었다는 뉴스를 보니,
옛 추억이 떠 올라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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