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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중국어 번역 신치(辛奇) : 김치 역사

류종중 2021. 7. 23. 07:32


☆ 김치 ☆

※ 정의

김치는 한국의 전통 발효음식 중 하나로 배추, 무, 오이 등과 같은 채소를 굵은 소금에 절인 후 물로 씻은 다음 고춧가루, 찹쌀 풀, 마늘, 생강 등의 양념과 젓갈을 넣어 버무린 후 발효시켜 만드는 음식이다. 이용하는 재료나 제조 방법 또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매우 다양한 종류의 김치가 있으며 같은 김치의 경우에도 지역에 조금씩 다르다.

※ 개요

사람은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풍부한 채소의 섭취가 필요한데 채소는 곡물과 달라서 저장하기가 어렵다. 물론 채소를 건조시켜 저장할 수는 있지만 건조시키면 본래의 맛을 잃고 영양분의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채소를 소금에 절이거나 장·초·향신료 등과 섞어서 새로운 맛과 향기를 생성시키면서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우리 고유의 식품이 바로 김치이다.

※ 어원

우리나라에서는 김치를 ‘지(漬)’라고 하였다.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서는 김치담그기를 ‘염지(鹽漬)’라 하였는데, 이것은 ‘지’가 물에 담근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말기에는 유교가 도입되어 복고주의로 흘러 중국에서도 6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저(菹)’라는 명칭이 쓰였다. 즉 본래 지라고 부르던 것이 유교의 복고주의에 따라 고려말부터 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조선 초기에는 ‘딤채’라는 말이 보이는데, 1518년(중종 13)의 『벽온방(辟瘟方)』에는 “무딤채국을 집안사람이 다 먹어라.”라는 말이 나오며, 1525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저를 ‘딤채조’라 하였다.

즉 우리 겨레는 소금에 절인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림으로써 독자적으로 국물이 많은 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은 숙성되면서 채소 속의 수분이 빠져나오고 채소 자체는 채소 국물에 침지(沈漬)된다. 또 국물이 많은 동치미 같은 것에서는 채소가 국물 속에 침전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네 고유의 명칭인 침채가 생겨난 것이다. 박갑수(朴甲秀)는 침채가 팀채가 되고 이것이 딤채로 변하고 딤채는 구개음화하여 김채가 되었으며, 다시 구개음화의 역현상이 일어나서 오늘날의 김치가 된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 김치 역사

김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 쓰여진 중국의 옛 문헌 『시경(詩經)』으로 ‘오이를 깎아 저(菹)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여씨춘추(呂氏春秋)』와 『설문해자(說文解字)』, 『석명(釋名)』 등의 문헌에 채소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초절임을 하거나 숙성시켜 신맛을 내는 식품으로 ‘저’가 소개되어 있으며, ‘저’가 곧 김치의 원형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김치를 먹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본 도다이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나 『연희식(延喜食)』의 기록으로 보건데, 삼국 시대 이전인 상고 시대부터 김치를 먹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의 전통음식, 김치의 역사
- http://naver.me/5X979qsZ

※ 김치의 로마자 표기

일반 용어에 들어가는 '김치'는 'gimchi'로 적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제품명으로 이미 쓰이고 있거나 기타 국제 관계상 필요한 경우 'kimchi'를 허용한다. (출처: 국립국어원(2000), "로마자 표기 용례 사전".)

※ 빨간 김치 유래

고춧가루를 이용한 빨간김치는 임진왜란이후 고구마,담배랑 같이 고추가 들어 와서,
그때 이후로 빨간김치를 담근것으로 유래됩니다.

우리나라의 김치의 초기모델은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까지 소금에 절인 염장식 하얀김치이고,

이것이 후에 임진왜란이후 일본에서 수입한 고추가 재료로 들어가면서 빨간김치가 된다.

고추가 들어 온지 100여년이 지나도 염장김치만 담가 이용하다가,
조선후기부터 김치에 젓갈을 사용하게 된다.

김치를 소금으로만 담그면 쓴맛이 강하게 나는데,
젓갈을 넣으니 감칠맛이 돌아서 김치맛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젓갈을 넣으니 비린맛이 나서,
비린 맛을 잡기 위해 매운맛을 내는 향신료였던 샨초와 초피(재피)를 첨가했다.

그러나 산초와 초피는 산에서 어렵게 채취해야 해서 밭에서 쉽게 채취할 수 있는 고추를 첨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고추가루를 넣은 빨간김치는 1970년대 이후 보편화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물론 1960년대에도 고추가 대량으로 재배되거나 수확량이 적었기 때문이다.

고추의 수확량이 적고 비싸서 1960~1970년대만 해도 상류층에서만 먹는 음식이였다.

1970년대 이후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교통이 발달되어 고추가 대량으로 재배돠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 고추가루를 넣은 빨간김치가 보편화되었다.


※ 김치 중국어 번역 '파오차이' 아닌 '신치'…정부 훈령으로 명시

최근 김치가 중국 음식 '파오차이'(泡菜)로 번역돼 논란이 된 것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를 '신치'(辛奇)로 명시했다.

문체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훈령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개정안이 22일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기존 훈령에서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 용례로 제시됐던 파오차이를 삭제했다.

신치는 김치와 발음이 유사하며, 맵고 신기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김치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용어로 선정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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