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전 일기를 복사했습니다.
친구가 행정안전부의 간접협조로 한국안전전문가 협회 협회장으로 급히 취임하게 되어,
축하난을 하나 보내고선 한참을 생각합니다.
한번쯤 본받아야 할 만한 친구이기에 소개합니다.
저의 고등학교 동창인
한국안전전문가협회 초대 회장인 이송규란 친구입니다.
이친구는
누군지도 몰랐다가,
10몇년전에 서울 고교동창 모임에 와서,
처음 보는 친구가 느닷없이 이명박정부 비례대표로 국회에 갈지 모른다면서 소개하길래,
썩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기술사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당사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공천을 받았더군요.
다만 순번이 늦어 국회의원은 못하고,
이명박정부말부터 문재인 정부 초기때까지,
서부발전, 포철자회사등 세군데 공기업 감사를 했었습니다.
그 이후 2년동안 쉬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다시 정치에 뛰어들까도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가,
우선 잠시 손 놓았던 전문적인 분야에 다시 시작하자 하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 친구는 광주에서 대학강의를 나가며 기술사 일을 해오다가,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 이후로,
학계나 언론기자들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연히 당시 사고대책본부의 감사위원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사고당사자인 삼성중공업에서 거금 20억원을 제시하면서 회유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를 과감히 뿌리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씩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사고후 7년이 지났어도, 피해보상은 흐지부지 되고 고스란히 힘없는 어민등 수산업종사자들의 한숨으로만 남았습니다.
당시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언론플레이하던 삼성중공업은 정부피해합동 조사결과 3조원가까이 피해가 나왔지만,
달랑 1,000억원만 증거금으로 공탁을 해놓고, 책임회피에만 급급해 했고, 이제는 잊혀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사고도 태안기름유출사고란 말을 사용해선 안되는데,
삼성측의 언론플레이로 사고의 이름마져 바뀌어버렸습니다.
사고 이름은
삼성 - 허베이시피리트호 사건이라고,
삼성중공업과 피해선박 이름으로 통칭되어야 하는데,
언론에서 가해자의 명칭이 아닌 엉뚱한 지역명만 언론에서 표시하여 ,
삼성중공업은 책임을 회피하려 했고,
언론에서는 미담으로 자원봉사만 과잉 방송하여,
삼성중공업은 법적책임의 최소화에 성공했고,
123만명의 자원봉사는 태안을 7년만에 살렸고,
자원봉사 보도는 삼성중공업을 살렸다.
말이 옆으로 빗나갔는데,
대기업의 무책임한 행태에 아직도 울분이 토해진다.
각설하고
이 친구는 당시 인맥(관료,언론계,학계)들을 공기업 감사로 재직하면서 꾸준히 관리해 왔다고 하더군요.
감사 연봉이 3억정도 하고,
업무추진비도 왠만한 사람 연봉이상은 하니 그 관리는 짐작이 될 것입니다.
문재인정부때 임기만료로 공직을 그만둔 후 2년간 쉬면서 고민하면서,
안전전문가로 새롭게 변신을 하게 됩니다.
굵직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사고가 생길때마다,
사고현장이나 방송스튜디오엔 안전전문가란 사람이 나와서 사건을 진단하고 향후대책을 논의하는데,
KBS,MBC,YTN등 뉴스에 고정으로 이 친구가 자주 출연을 하더군요.
그래도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했습니다.
1년반정도 전에 모임을 갖었는데,
인터넷 신문을 하나 창간할까 생각중이라고 합니다.
실감이 안되었습니다.
인터넷 신문을 종합뉴스 신문이라고만 인식하고 있어서였습니다.
자기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기자들과 사고 현장을 나가고 방송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준비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려러니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가끔 만나도 술잔이나 부딪혔지 잊어버렸습니다.
제기 한 일은,
제가 아는 지인들 단톡방에 이 친구가 발행한 매일안전신문의 특정 기사를 몇번 복사해 전달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제가 썼던 몇개 글을 작성해서 보내주기도 했었습니다.
원고료는 스타벅스 커피로 카톡으로 보내주더군요.
기사 한건당 5천원 수준.
작년말에 만났을때
독자가 이제 만명을 넘었고,
현재 1년동안 직원은 자기하고, 딸 이렇게 둘이서 하고 있는데,
독자들이 꾸준이 늘어 기자들을 많이 채용할 계획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블로그를 7개 운영하고 있고,
유튜브도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불과 6개월전인데,
이번에 강남역 근처 음식점에서 저녁을 같이 하면서 듣기를,
이제 시작한지 1년반이 되었다.
기자들도 현재 12명으로 늘렸다.
독자들도 7만명을 넘어 섰고,
손익분기점도 이미 넘어,
월수입이 3~4천만원이 되었고,
내년말까지 연봉을 10억이상 목표로 하고,
3년안에 30억은 넘어야 하지 않겠냐고 한다.
이런 뭐야 !
축하한다 축하해 하면서 박수를 치는데 몹시도 부러웠다.
주위 친구들은 이제 다들 정녀퇴직을 하고 있고,
연금으로 살아가는 친구,
새출발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너는 역시 멋진 출발을 했구나 하고 친구가 부러워진다.
이미 고통의 터널을 지나 안착했다 생각이.드니까.
그때까진 축하한다면서 좋았는데,
막판에 이놈이 하는 말이 나를 좀 고민이 들게 한다.
너도 나름 글솜씨가 있던데 글을 좀 다듬고 준비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까지 인터넷 신문 성공률이 2.5%였는데,
올해는 2%로 더 힘들어졌다.
하루 빨리 준비한번 해봐라 라고 맥주잔을 부딪힌다.
아 ! 이거 고민아닌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게 하네.
#인터넷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