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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값 계란이 불러 온 행복

류종중 2021. 7. 21. 17:21



저녁에 집사람이 수퍼에 갔다오더니, 계란값이 금값이라고 투덜댄다.



한달쯤 전에 아파트 수퍼가 주인이 바뀌었는지 새로 단장을 하고 개장을 했다.



오픈 기념으로 삼겹살, 농식품등 왠만한 물품들을 1~2주 반값으로 할인해서 파느라고 손님들이 아주 많더군요.



이것 저것 산다고 가기만 하면, 덤으로 계란한판을 사오더군요.

그동안 며칠 사다 놓은 것도 몇판 있는데,

한판에 평소 반값도 안되는 1,500원에 판다고 사다 쟁이길래,

그러다가 썩는다고 한마디 했다가,

쓸데없는 잔소리한다고 해서 깨갱깽하고 말았었습니다.



그동안 찐계란,장조림,찜,계란말이,후라이등 매끼마다 반찬으로 나오더니,



오늘 드디어 떨어져서

계란을 사러갔다가 놀래 그냥 왔다고 합니다.



평소 가격보다 100%가 넘게 올랐다고 합니다.



코로나 숫자만 매일 줄었는지 늘었는지 신경을 썼지,



해년마다 겨울철만 되면 찾아 오는 조류독감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었는데,

엄청난 양의 산란닭의 살처분으로 급등했나 봅니다.



저녁을 먹고,

계란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때였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미술시간이 제일 부담스러웠습니다.



미술시간만 되면,

백노지 한장씩 가져오라고 하거나,

크레용 하나를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름 어느날 미술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미술시간 준비로 크레용 하나씩을 아무색이나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집에 있는 크레용을 가져갈려고 했더니,

아마 그날 누나도 미술시간이 있어 크레용을 가져가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색연필을 하나 살려고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색연필을 하나씩 낱개로 팔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

고급 학용품으로 8개들이 8색 크레용이 있었습니다.

5~6학년때는 12색 크레용이 나왔고,

분필같은 고급 파스텔 크레파스도 그후에 나왔습니다.



엄마가 돈이 없다고

닭장에서 계란을 하나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다들 아시겠지만 시골에선 물물교환이 가능하지 않았었습니까.



그전에도 됫병짜리 큰 유리 소주병을 가져가거나(기억으론 30원정도 쳐줌)

계란(10원)을 가져간 경우가 있어서 걱정은 안했습니다.



물론 소주병 주둥이 알탱이가 약간 떨어져 나가 다시 집에 가져가라고 퇴짜 맞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새 달걀을 들고 학교옆 새점방(친구네 집)에 갔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계란을 들고 귀에 대고서 몇번 흔들더니,

곯아서 안된다고 하더군요.



오늘 막 낳은 달걀을 닭장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내말을 안 믿더군요.



할 수 없이 계란을 들고 학교에 가서 책상속에 계란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걸 본 내 한동네 사는 여자짝꿍 강영자가 뭐냐고 물어보길래,

얼굴 빨개져서 성질내면서 상황을 얘기해줬더니,

자기 책보에서 크레용을 보여주더군요.

8개들이여서 하나를 준비물 검사할때 빌려준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끝종시간에 밖에 나가 맘껏 놀고 교실에 들어와 미술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짝꿍 영자에게 색연필 하나 달라고 했더니,

앞뒤옆 책장에 앉은 친구들이 다 가져가 버리고 검정색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이 미술준비물 검사를 하더군요.



조마 조마하다가 순간적으로 하나남은 검정색 크레용을 분질러 두개로 나눠 하나씩 각자 책상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짝꿍 영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울더군요.



드디어 선생님이 내 앞에 와서 상황을 파악하고선 나를 많이 혼내더군요.



짜증나는 미술시간이 끝나고 청소시간이었습니다.



청소를 위해선 책상을 들어 뒤쪽으로 가져 가야했는데,



성질나서 책상을 옮기고선 쎄개 놓았습니다.

그랬더니 책상속에 있던 달걀이 교실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깨져버리더군요.



뭐야 뭐야 하면서 다들 수근거리는데,

누군가가 종중이 달걀깨졌다고 놀리기 시작하니,

다들 나를 놀리더군요.



창피해서 어쩔줄 몰랐던 기억이, 지금도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미술시간과 달걀에 대한 추억이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추억거리이지만,



색연필을

그것도 새로 사서 한번도 안쓴 색연필을 부러뜨려 놓고 당당해 하는 모습이 어처구니 없고 부끄럽습니다.



그 모습에 속상했을 짝꿍 강영자와 영자부모님께 이제라도 사죄드립니다.



계란 한판이 금값이라지만 추억여행을 떠나게 해 주어서 행복한 저녁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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