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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세시풍속(설날 선물)

류종중 2023. 1. 28. 21:25

사라져 가는 세시 풍속(새해 선물)

2023년 계묘년 설날을 맞이하여 ,
한국문화재단과 문화재청 공능유적본부에서 ,

경복궁에서 선착순으로
2023년 계묘년(癸卯年) 수문장 세화 나눔행사를 한다고 인터넷에 홍보가 되었다.

문화재청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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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설연휴 첫날인 1.21(토) 10시에 가족들이랑 경복궁에 놀러가기로 했다.


그런데
세화(歲畵)가 뭔지 바로 떠오르는게 없어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야 했다.

세태가 바뀜에 따라 사라져 간, 조선시대에 설날을 맞이하여 임금이 신하에게 주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세화뿐만 아니라 최근까지 유행했었는데,
점점 사라져 가는 세시 풍속(새해 선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1. 세화(歲畵)

* 정의

고려말 이후 조선시대에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하여 그린 그림과 풍속

조선 시대에, 새해를 축하하는 뜻으로 대궐 안에서 만들어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 주던 그림. 선동(仙童)이 불로초를 짊어진 모습이나 태상 노군을 그렸다.

* 내용

질병이나 재난 등의 불행을 사전에 예방하고 한 해 동안 행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벽사적(辟邪的)이고 기복적(祈福的)인 성격을 띠고 전개되었다.

새해 첫날의 세시풍속의 하나로 이루어졌다. 문짝에 주로 붙이기 때문에 문배(門排) 또는 문화(門畫)라고도 하였다.

* 유래

세화歲畵를 주고받는 풍속의 기원에 관해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재앙을 막기 위해 문에 그림이나 글씨를 써서 붙였던 문신門神과 더불어 연말 연초에 그림을 매개로 이루어진 벽사진경辟邪進慶을 위한 풍속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중국
중국에서 서기전부터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기 위해 문신을 대문에 그려 붙이던 주술적 관습이 6세기경 정초의 연례행사로 정착되면서 유래된 것이다. 명대(明代)·청대(淸代)를 통하여 연화(年畫)로 크게 유행하였다.

- 우리나라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말이후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궁중 풍속으로 시작되어 점차 민간층으로 확산되었다. 농촌보다는 정교한 대문을 가진 서울 등의 도시 주택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 내용

그림의 내용으로는 신라시대 이래로 역귀(疫鬼)를 쫓는 벽사신인 처용(處容)이 조선 초기에 제작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로 중국의 도교와 관련된 문신들이 많이 그려졌다.

대궐문 양쪽에는 당나라 장군인 진숙보(秦叔寶)와 위지공(尉遲恭)에서 유래된 금(金)·갑(甲) 두 장군상을 한 길이 넘는 크기로 그려서 붙였다. 중문과 곁대문 등에는 붉은 도포에 검은 사모(紗帽)를 쓴 위정공(魏鄭公)과 종규(鍾馗)가 귀신 잡는 형상을 붙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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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지공 금갑 그림 : 네이버 이미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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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민간에서는 동물 중에 벽사력을 많이 지닌 것으로 믿어오던 닭과 호랑이를 비롯하여 해태 모양의 사자와 개를 그려 붙였다.

삼재(三災)가 든 해에는 특별히 매 그림[鷹圖]을 대문 등에 붙였다.

그리고 기복적인 송축 등으로는 장수를 상징하는 수성(壽星)과 선녀 그림을 비롯하여 길상적(吉祥的)인 성격을 지닌 인물·화훼·누각 등을 그렸다.

[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1) 코로나19 시국의 세시풍속(歲時風俗) 문배도(門排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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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의 고사성어로 보는 세상](61) 코로나19 시국의 세시풍속(歲時風俗) 문배도(門排圖) - 인사

우리 선조들은 한해의 시작을 의미하는 대명절인 설에 세화(歲畵)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일종의 연하장인 셈이다. 선조들은 사람의 출입뿐 아니라 복이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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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수량

세화는 궁궐에서 시작된 풍속으로 그림의 제작은 도화서의 화원들이 맡았으며, 매년 필요한 양을 그려 내면 등급을 매겨 골라서 궁내용으로 하고, 나머지는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하였다

궁중에서 사용하는 것은 도화서(圖畫署)에서 제작하여 12월 20일경 진상하였다. 그리고 이를 우열별로 등급을 나누어 각 전(殿)과 종실, 재상과 근신들에게 하사하였다.

도화서에서 매년 12월에 진상하는 수량은 조선 초기에는 60장 가량이었다. 그러나 연산군 때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중종 연간에 이르러 신하 한 사람당 20장씩 하사할 정도로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이를 위하여 임시로 고용된 차비대령(差備待令)의 화원이 각각 30장을 그렸다 한다. 그리고 도화서 소속 화원들은 각기 20장씩을 그렸다. 제작 기간은 1, 2개월에서 길게는 3개월이 걸리기도 하였다.

- 조선 초기(중종 이전): 60장
- 중종이후 : 700장

지방 관아에서 소용되는 것은 그곳에 소속된 화원들이 제작하였다. 그리고 일반 민간인들은 지물포 등에서 주로 구입하였다.

짙은 회색을 사용하여 장식성이 강조되었고, 창조성보다는 본보기 그림에 의하여 되풀이되어 그려지면서 도식화된 양식이 인습적으로 계승되었다.

* 오늘날 세화

오늘날 세화는 민화의 범주로 분류되고 있으며, 해마다 새로운 것으로 갈아 붙였기 때문에 오래된 유물이 드물다

조선 초기부터 풍습화되어 20세기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처음에는 궁중 풍속으로 시작되어 점차 민간층으로 확산되었다. 농촌보다는 정교한 대문을 가진 서울 등의 도시 주택을 중심으로 성행하였다.

그림을 붙이고 또 송축의 의미로 주고받았던 그림을 매개로 한 과년課年 풍속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일부 남아 있었으나,

1960년이후 거주형태가 아파트로 바뀌는 것등으로 지금은 사라져 보기 어렵다.

* 2023년 세화


http://m.ktv.go.kr/program/again/view?content_id=667218

토끼띠 새해 맞아 토끼 세화전 눈길 끌어

KTV 국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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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달력

* 달력

천체 운행의 주기적이고 규칙적인 현상으로부터 시간의 흐름을 측정하는 방법을 ‘역법(曆法)’이라고 한다.

즉 시간을 구분하고, 날짜의 순서를 매겨 나가는 방법인데 시간 단위를 정하는 기본이 된다.

역(曆)에 해당되는 것은 밤낮이 바뀌는 것과 4계절의 변화, 그리고 달의 위상 변화(位相變化)가 대표적이다.

태양과 지구, 달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스스로 돌고 있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운동을 보고 하루나 한 달 또는 1년의 길이를 정하였다.

역법이란 천체의 주기적 운동을 살피고 예측하여, 인간의 생활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시간의 단위 등을 만드는 법칙이고, 이를 생활에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달력이다.

즉 달력이란 일년 중의 월·일·24절후·요일·행사일, 해의 출몰, 달의 영허(盈虛), 일식·월식을 날짜에 따라 기록하여 놓은 것.

* 지금의 달력

1582년경에 그 기초가 만들어졌으며, 당시 로마 교황인 그레고리의 이름을 따서 그레고리력이라고 부른다.

달력(calendar)은 라틴어로 ‘회계 장부’라는 뜻의 ‘calendarium’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달력은 이를 일상생활의 편이를 위하여 만든 상용력(常用曆)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양력과 음력도 병용되고 있다.

음력은 어촌에서 바닷물의 간만이 음력 날짜와 관련이 있는 것이므로 유일한 이용가치가 있을 뿐 실제 일상생활에 쓰기에는 불편하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1895년(고종 32)에 내린 고종의 조칙(詔勅)으로 그해의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양력 1월 1일로 고치면서부터 양력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 달력 구분

달력은 기본 주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역법이 달라진다.

기본 주기를 해(太陽)의 천구상 운행에 두었을 때는 태양력,

달(太陰)의 삭망(朔望)에 두었을 때를 태음력이라 한다.

또 달과 태양, 두 천체의 운행을 함께 고려한 것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한다.

※ 조선시대 달력

* 국가가 제작 • 판매 독점한 전매사업

* 조선시대 달력 제작은 관상감에서 맡았는데, 관상감은 현재의 기상청과 비슷한 역할을 하던 정부기관이다.

* 독점 이유
이처럼 엄한 규정을 두면서까지 달력의 제작을 정부에서 독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달력을 제작하는 권한이 바로 권력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은 봉건시대 통치자가 갖고 있던 여러 가지 권력 중 하나였다.

이러한 힘은 현재도 여전히 정부에서 가지고 있다.

과거시험을 언제 치를 것인가를 임금이 정했던 것처럼, 수능시험 날짜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또 관상감에서 제작한 달력으로 절기를 알려주는 것처럼, 현재도 공휴일을 정한다든가 대체공휴일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는 정부에서 결정한다.

* 조선시대 달력 제작
- 초기 : 4,000 ~5,000부
- 영조시대 : 20만부
- 정조시대 : 38만부
: 15% 무상 배포,
85% 판매용
- 엄금했지만 19세기엔 공급 부족해 민간 제조품이 전국적 유통

* 선물용 달력 사라지는 이유

- 스마트폰의 보급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가 달력이다.

- 연말이 되면 새해의 달력을 구해서 벽에 걸거나 책상에 놓고 새로운 한 해를 구상하는 것은, 아마도 스마트폰 이전 시대의 일상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 회사가 아닌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도 자기 가게의 상호를 넣은 달력을 만들어서 단골손님들에게 돌리곤 했다.

그러나 요즈음 세모(歲暮)가 됐다고 해서 달력을 단골손님에게 선물로 주는 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 시간을 알기 위해 시계를 볼 필요가 없고, 약속 날짜를 잡기 위해 달력을 보지 않아도 되며, 그날의 날씨나 새로운 뉴스를 알기 위해 신문을 찾을 필요도 없어졌다.

- 아파트로의 주거형태 변화 및 소득수준 향상

과거의 한옥 다락문이나 장지문에는 대개 그림(세화)을 붙였다.

네 쪽의 다락문에는 닭·개·사자·호랑이 그림 넉 장이 한 세트로 된 것을 붙였고, 장지문에는 잉어가 폭포를 오르는 그림처럼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를 꿈꾸는 내용의 낱장 그림을 붙여놓았다.

1960년대 이후에 이와 같은 전통적인 그림들이 사라지면서, 이 자리에 여자배우나 외국의 풍경 사진이 대신 들어섰다.

매달 바뀌는 달력의 그림은 벽에 걸어놓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장식이었고, 또 그중에 마음에 드는 그림은 오려두었다가 벽이나 벽장문에 붙여두기도 했다.

거주형태가 아파트로 바뀌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달력의 그림을 오려서 벽에 붙이거나, 달력 자체가 장식이 되는 일은 점차 사라졌다.

- 세상의 모든 정보는 손안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다 나온다.

* 잘못된 상식

※ 달력
- 달려 있는 역서란 뜻에서 달력이란 용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한달, 두달 이런 개념으로 달력으로 알았는데,
벽이나 기둥에 달려 있는 역서란 개념에서 달력이란 용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 그 동안 상식으로 안 달력이란, 1년 동안의 날을 각각의 달에 따라 요일, 절기, 공휴일 등으로 적어 놓은 것.

중국에서는 달력하면 두가지로 불린다고 합니다.

- 괘력 (掛曆)
벽이나 기둥에 걸어 놓고 보는 일력(日曆)이나 달력.

우리가 아는 달력인데,
한자로 월력(月曆)으로,
한글로 달력으로 알았는데 틀린 표현이라고 합니다.

- 대력 (臺曆)
탁상용 달력

♡ 추억의 폐달력 활용

* 폐달력 책 표지 케이스

* 달력 그림 벽이나 문에 부착해 그림 감상

* 창호지 대신 연 제작

* 종이 비행기등 종이 접기

* 딱지 제작

* 이면지 활용

* 일력 달력 활용
- 봉초 말아 까치 담배 제작
- 부드러운 일력 찢어 화장지 대용

3. 연하장

* 정의
새해를 축하하는 인사편지 또는 그에 이용되는 엽서.

연하장이란 새해를 축하하기 위하여 간단한 글이나 그림을 담아 발송하는 카드 형식의 문서를 말한다.

* 유래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받게 되면서 크리스마스 축하와 신년 인사를 함께 인쇄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연하장의 전신이다.

우리에게도 신년에 상대방을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의 서찰을 보내는 풍속은 있었는데, 조선시대 세함(歲銜)이 그것이다.

새해에 스승 ·부모 ·친척 ·친지 등에게 직접 인사를 하지 못할 경우에 아랫사람을 시켜 문안의 서찰을 보내던 풍습은 근대에 들어 우편법이 제정되고 엽서가 발행되면서 지인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는 풍속으로 변화하였다.

* 연하장의 변천

인터넷이 일상생활에 깊숙이 들어온 현재는 연하장을 주고받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현재는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인터넷 연하장이 우편 연하장과 함께 사용되고 있다.

몇 번 클릭만으로 보내는 인터넷 카드는 종이 카드를 고르고 우표를 붙이고 발송하는 과정이 불필요한 간편함과 많은 사이트에서 무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무비용성 등으로 인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 연하장 혹은 사이버 카드는 간편하고 비용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동시에 보낼 수 있는 특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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