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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장과 중대장의 37년만의 만남 그리고 제주도 여행

류종중 2023. 3. 8. 00:13


2023년 .2.18(토)~2.20(일)까지 2박3일 동안,
동생 환갑기념으로 제주도에 형제 가족들 21명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곳에서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63대대 10중대장(85년~87년)이셨던 이명식사장님과 여행을 함께 했습니다.


1. 이명식사장님과 군대 인연

나는 86.10월부터 87년 4월초까지 대청도 해병대 63대대 10중대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했었다.

그때 중대장으로 모셨던 분이 이명식중대장님이시다.

이 분은 충남 공주출신(59년생)이시고,
해군2사관학교 5기 출신이시다.

이 분은 중대장재직시 지휘관으로서 부하복이 없었던 분이시기도 하다.

지휘관은 제대로 완편된 부대를 지휘해야 하는데,
이 분은 (-)부대를 지휘하시다가 , 부대를 완편시키고 부대를 떠나게 된 경우이다.

당시
85년도에 김포에 북한에서 조하사가 넘어와 귀순하면서,

군부대에 신고하지 않고,
민가에 들어와 할머니에게 신고하는 바람에,

경찰서 - 치안본부 - 내무부 - 국방부 - 해병대 - 2사단 으로 역순으로 신고되어,

당시 2사단 사단장이하 장교들 27명이 옷을 벗거나 보직해임을 당하고, 소초장(소대장)부터 많은 2사단 해병들이 영창을 가게 되었었다.

이때 해병대에서 했던 조치가 ,
경계근무 인원이 부족해서 뚫렸다고,

대청도 예비중대인
10중대 인원을

장교로는 중대장 1명,
선임하사는 중사 1명,
중대원 30여명만 남기고
김포에 차출을 해버리고 부대원 충원이 늦어진  상태에서 만났던 분이었다.

물론 2020.7월에도 이번에는 김포를 통해 임진강을 헤엄쳐 탈북자가 월북한 사건이 생겨,
해병대 2사단 사단장이 보직해임되었고, 많은 해병들이 그때 처럼 엄청 많은 고초를 겪었을 것 같다.

86년부터
작계가 바뀌면서,
백령도 해병대 6여단이 방어부대성격에서 공격부대로 바뀌게 된다.

그에 따라
백령도에
수색중대, IBS대대(고무보트 기습특공대대),미사일 부대등이 신설되었다.

87.1월에 백령도에 수색중대가 창설되고,
수색대에서 87년 4월부터 수색교육이 실시되었다.

87년도에 63대대에 1개소대를 특수수색소대로 만들기 위해 ,

63대대 예비중대인 10중대 소대장이었던 내가 해병대특수교육인 수색교육에 차출되면서 ,

중대장님과 헤어지게 되었다.

물론 처음 수색교육을 시작할때는,
66명이 입교를 하여
수료후, 절반은 수색대에 잔류하고, 나를 포함한 절반은 63대대에 복귀할 계획이었는데,
무식한 교육훈련으로  부상등으로 많은 인원이 퇴교를 하여  23명밖에 수료를 못해 ,
수료한 전인원이 수색대에 잔류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 내 소속이 수색중대로 바뀌어 버려 원대복귀를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다른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게 되어 서로의 소식을 모른체 37년이 흘렀다.

부대 막사 건물을 새로 신축하여 ,
63대대가 대청도에서 백령도로  87년말에 부대가 이전을 하였는데,

수색대와 63대대와의 거리는 불과 2km정도 밖에 안떨어졌는데 그게 그렇게 되었다.

물론 한두번 정도 부대를 방문했었는데 중대장님을 뵙지를 못했던 것 같고,

87년말경에 여단앞 연봉회관에서 마지막으로 삼겹살에 소주한잔 한 기억만 남아있다.

2. 중대장님 근황 파악 경위

친구들과 술한잔하다가 고교친구들중 해병대출신이 누구인지 재미로 한번 파악해보자고 했는데,
그 중 한명이 중대장님과 연결이 되어 기쁜 만남이 이루어졌다.

* 고교동창중 해병대출신 파악

동창들을 만날때,
누구 누구도 해병대 나왔다더라 하는 얘기를
가끔 듣다가,

2022년 어느날 우연히 해병대출신 친구 세명이 술한잔하다가 ,
광주친구들이랑 함께 누구 누구 나왔는지 한번 찾아보자는 얘기가 나와서,
명단을 파악하고 단체카톡방을 만들었다.

누군가가 단톡방에   해병대장교도 한명 더 있다며,

해군 제2사관학교를 나와 해병대장교로 군입대후 대위로 전역한, 3-9반 김태문친구인데,

자기도 연락처를 모른다고, 내가 장교출신이랍시고 나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학교다닐때도 한반이 아니어서 누군지 몰랐고,
군대에서도 같은 부대에서 함께 군생활을 안해서  모르는 사이였다.

해병대사관 총동문회 사무총장인 69기 최병조선배 도움과,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사무총장인 김정의 2사7기 예비역 대령의 도움 덕택으로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김태문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군 전역후 제주도에서 예비군중대장으로 정년퇴직후에,
제주도 에코랜드 관광열차 제2역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친구는 59년생인데 초등학교졸업후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2년늦게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해군2사관학교(2사,지금은 없어짐)1년 선배들과  선배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몇명 있는데,

이 친구를 통해 대청도에서 중대장으로 모셨던 분의 연락처를 알게되어 36년만에 중대장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 36년만의 전화 통화

필승 !
저 대청도에서 10중대 소대장 했던 류종중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더니,

중대 소대장이었다고
기억하시면서, 무척 반갑게 맞이하시더군요.

이분은  비해사출신이라 소령진급을 못하시고, 대위로 전역하신후 제주도에서 예비군지휘관(중대장)으로 정년퇴직후, 여행사를 운영하시고 계시더군요.

88년도 12월 해병대장교진급을 예로 들면 ,
대위에서 소령진급대상자중
해사 20명중 19명진급
(1명 사고로 중대장 보직해임자),

비해사(해간,2사,Rotc) 19명중 1명 진급하던 시기라,

해사출신이 아니면 진급이 힘들던 시기였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어떤 지는 잘 모르겠다.

30년이 넘었건만 엊그제 헤어진 것처럼 반갑고  기분이 새롭더군요.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다가,

중대장님이 다른 대원들 소식도 알고 싶어 하길래,
연락처를 파악해서 전해드리겠다고 대답을 했다.

같은 10중대에서 있다가 수색교육을 같이 받고,
수색대에서 함께 군생활했던 연락되는 두명 유재덕, 김광추친구를 통하면 많은 중대원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0중대원을 물어 물어 찾아 ,
5명의 연락처를 알게 되어,
전화통화도 하고 카톡으로 대화하기도 하면서 감회가 새로웠다.

10중대모임을 계속 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들이 다음 모임때 나를 초대한다고 하더군요.

소대장으로 같이 생활한지 7개월밖에 안된 후 ,
수색교육에 차출되어 가버리게 되어 인연이 끝나 무관심했었는데,
가물 가물 기억이 나는 친구들도 있더군요.

몇명 파악한 중대원들 5명의 연락처를 중대장님께 보내드렸더니,

중대장님으로 부터 대신 전해달라시며 문자가 왔습니다.

기분이 좋다며
인사말을 글로 써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
1980년대 중후반 대청도
10중대 중대장 이명식
입니다 .

자연스럽게 연결이되어
반가움에 먼저 소식전합니다.

전국에서 해병대 출신
으로서 멋지게 깔끔하게 사시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보고싶습니다.

그리운 전우들 !

나는 이곳 제주에서
5년전 지역예비군지휘관
재직후 정년퇴직 .

현재 22세기여행사 대표

관광버스기사 가이드를 하고 있어요 .

사회생활 또한 모든 것들이
체질에 맞아요.

옛전우들을 늦게나마 다시
접할수 있다는 것 크나큰
행복입니다.

생활하시는 곳에서 자신과
가족들과 지인들과 늘
행복하게 잘살아요.

조만간에 얼굴뵙기를
원합니다.

옛전우들과
한국 해병대와
내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

3. 37년만의 해후

작년에 연락처를 알게 된 후,

2023년에 동생 환갑 기념 형제 가족들 제주도 여행을 2월에 하게 되었다.

6년전 형님 환갑에는 33명이 백령도 여행,
4년전 누나 환갑엔 계룡산 갑사, 공주 마곡사 여행을 했었고,
코로나로 나는 방콕에서 혼자 보내고,
금년에 동생때는 제주도에 21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조카등 여러명이 출근등으로 많이 불참하여 인원이 다소 적었다.

처음 계획은  
승용차를 가족위주로 렌트하여 제주도 여행을 할 계획이었다.

마침 옆동네에 사는 시골 초교 7년후배인 막내동생 친구가 제주도에서 렌트카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렇게 추진하였었다.

여행계획을 누나와 동생들이 세웠었는데,

중간에 내가 나서서 버스렌트 여행을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변경을 했다.

차량을 여러대 운전하는 위험을 피하고, 편한 여행을 위해서였다.
경제적인 부담 차이도 크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사를 운영하시는 중대장님을 37년만에 만나게 되었다.

일부러 저랑 얘기를 하고 싶어서 25인승 버스를 직접 운전하시면서 같이 여행을 하시겠다고 하셨다.

여행을 같이 하게 되니,
37년만의 만남에 설레였다.

4. 37년만의 소대장과 중대장의 만남

* 만남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약을 했다.

우리 가족들중
아들가족은 손자가 아직 어려 여행을 포기했고,

며느리가 대한항공에 재직중이어서,
우리 내외는 가족할인으로 왕복 9만원,
딸은 27만원정도로 예약을 했다.

10분쯤 연착후 2.18(토) 11:30분경 제주도에 도착후 제주공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미리 카톡으로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가족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버스에 불갑형제 가족 여행 이라고 표시하기로 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옆에 모자를 쓰고 계신 분이 있었는데,

기대하고 있어서인지, 37년만에 뵀는데도 인상이 그대로 떠올라,

필승 ! 하고 거수경례를 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악수를 하며 껴앉는데 37년 긴세월의 흐름이 순간으로 좁혀졌다.

5. 2.18(토)일 제주도 여행

차에 타자마자
서로 인사를 하고,
운전을 하시면서 안내를 하시는 이명식사장님을 소개하면서 ,
예전에 내가 모셨던 중대장님이라고 가족들에게 소개를 했다.

가족들끼리 인사를 하고 다왔나 인원체크를 하니
미리 알고 있던 인원의 변동이 있었다.

23명에서 조카들의 사정으로 19명이 여행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2명이 추가가 되어 21명이 함께 하게 되었다.

미리
19명으로 계산해서,
여행지 입장료와 식비를 여행사에 입금했었는데,
인원 변동이 있어 마지막날에 정산하기로 했다.

처음엔 23명 계획일때,
중대장님이 편하게 여행하라고 , 승용차도 한대 무료로 렌트해주시겠다고 해서,

여행전부터 그 정과 서비스에 고마움을 느꼈었다.

물론 인원이 갑자기 줄어 그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 선물

인사소개가 끝나자
식당으로 이동을 하는 도중에 시장기를 달래며
요기하라고 ,

중대장님이 ,
제주특산품 오메기떡을 한박스 선물로 차에 싣고 오셨다며 하나씩 맛보면서 이동하자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다함께 박수로 고마움을 표하고,
떡을 하나 맛보았는데 역시 별미였다.
5가지 종류별로 만들어진 떡이었다.

떡을 한입하다가 갑자기
준비해간 선물이 생각났다.

37년만에 만나 뵈면서 그냥 가기가 그래서
진도 홍주 술한병을 준비했었다.

이 술도 사연이 있다.
미리 집에 있는 다른 술을 한병 준비할려고 했는데,

여행떠나기 전날에,
불갑향우회 임원 모임이 있었는데,

2년 선배님이 진도 홍주를 같이 마시자고 가져 오셨다.

이 술을 보자 마자,
나중에 한잔 산다고 하고 얼른 술을 숨겼다.

전라도 특산품이기에...

중대장님께 술 전달식이 있겠습니다.

다같이 박수 !
하면서 웃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 여행 일정 변경

식당으로 이동을 하면서
여행 일정을 바꾸자고 하신다.

이동거리와 공연 시작 시간때문에 그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신다.

우리는 잘 모르니까 중대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하고 대답했다.

오늘 여행 일정과 내일 일정을 바꿔서 하기로 했다.

* 점심

- 메뉴 : 굴해장국
- 가격 : 9,000원

메뉴를 변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서, 전체 통일하지 않고, 소고기국밥으로 4개는 바꿨다.

36개월 미만 아기가 한명 있어서 20명으로 주문하고 계산을 했다.

식당이 크고 깔끔하게 방으로 되어 있는데,
20명기준이어서 ,
보조 의자를 놓고 같이 식사를 했으면 했는데,

불편해서 할 수 없이 중대장님은 따로 식사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좀 모양새가 그렇고 마음이 안 편했다.

드디어 굴해장국이 나왔는데 ,

보기와 다르게 한 숟가락 맛을 보고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맹맛이었다.

다데기를 찾았는데,
그 식당엔 그런게 없다고 한다.

깍뚜기 국물을 넣고,
배추김치를 넣으니 그제서야 입맛에 맞다.

배추김치를 세번 달라고 했는데 싫은 표정을 안 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제주지역 사람들과 전라도 우리 형제 가족들 입맛하고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았다.

술꾼들이 많아 반주로 한잔하기로 했는데,
한라산 21°소주였다.
역시 도수가 입맛에 맞았다.
그런데 너댓잔 마셨더니
바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다.

* 더 마 파크 관람

말 공연이었다
몽고 출신 기병들이 고구려 전쟁 역사를 풍자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시작 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도착했고,
배가 갑자기 불편해서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중간에 들어 갔더니,
시나리오 줄거리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공연무대가 거대하고, 기수들의 말타는 솜씨가 좋아 말공연이 한번쯤 볼만 했다.

* 카멜리아 힐

동백꽃 정원이었다.
아기 자기하게 공원조성을 잘 꾸며놓았다.

다만 동백꽃이 2월인데도 벌써 다 져버려서 꽃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 옛 중대원과의 통화

가족들이 다 입장을 하고
나서,

공원 입구에서 나는 좀 있다 들어가자 하고는,

연락되는 10중대출신들 4~5명과 통화후 중대장님과 연결을 시켜드렸다.

모양새는 애매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전화받던 사람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을,
두고 두고 기억하리라 생각된다.

* 저녁

가족들은 숙소에서 식사를 했다.
누나가 미리 서울에서 문어를 사다가 삶아 택배로 보내기도 하고,
숙소에 가기전에 하나로 마트에 들려 장을 보고 저녁파티를 했다.

나는 제주도 간김에 고교친구, 군대친구 그리고 중대장님이랑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6. 제주도 지인들과의 만찬

서울에서 미리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함께 식사를 하자고 카톡을 보냈다.

* 안내문

안녕하십니까?

류종중입니다.

제가 동생 환갑기념으로
형제가족들이랑 제주도 2박3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오랜만에 제주도 가는 김에,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는,
고교친구 4명,
군대동기 3명,
그리고
제가 대청도에서 소대장할때 모셨던 중대장님을 함께 보고 싶어서,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2박3일 일정이라,
하루 저녁밖에 가족들이랑 따로 식사자리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
함께 만남의 자리를
했으면 합니다.

또 고교친구인 김태문친구는
해병대2사관학교 6기라,
우리보다는 군대 대선배이지만,
내 군대동기들이랑 같이 해병대출신이어서,
고교친구나 군대동기랑도 같이 공통점이 있어 함께 해도 되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나이들이 60이 넘어,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면 같이 합석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많은 양해부탁드리고,
바쁘시더라도 꼭 함께 했으면 합니다.

❤ 제주도 저녁 모임 안내 ❤

- 일시 : 2.29(일) 18:00
- 장소 : 검은여식당
: 고교친구 박진인 와이프가 운영
- 대상 : 9명
• 이명식중대장님(2사 5기)
• 류종중고교친구
: 4명(김태문,박시사,박세진,박진인)
• 류종중군대동기
: 3명(오진보,서화찬,고민영)
• 류종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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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여식당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번영로 3496
https://naver.me/FSNtlK0V


❤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해주시길 부탁드리고,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 참석 가능 여부를 꼭 카톡이나 문자로 저에게 부탁드립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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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친구 2명은 사정이 있어 다음 만남을 기약 했고,
박진인친구가 사업상 출장이 생겨,
하루 앞당겨 2.18(토) 저녁에 만남이 이루어 졌다.

* 너무나 넓은 제주도

처음 만남의 장소를 정할때,

친구 와이프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정했다.

당연히 메뉴도 검색해 보았는데,
술한잔 하기에 가격이나 요리가 적당했다.

서로 떨어진 거리를  생각못하고,
제주도 지리를 몰라
식당에 오는데 너무 먼 사람을 생각 못했다.
제주시내가 제일 무난했을텐데 말이다.

군대동기 서화찬친구는
버스를 세번 갈아타고 오는데 ,
시간대가 안맞아 3시간이나 걸렸다고 했다.

군대에서 처음 자대배치 받을때가 생각났다.

백령도섬에 가기전에,
누군가 장난말로

산에서 공을 발로 차면 바다에 빠지는 곳이 백령도라고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술마시러 저녁에 몰래 나갈려면 ,
차도 없어 한시간 이상을 뛰어가야 하는 제법 큰 곳이었다.

그보다 더 큰 제주도인데,
감이 안와 멀리 떨어진 줄을 못느꼈었는데,
그냥 미안하다 하고 말았다.

서귀포시 표선면 검은여식당은
제주도시내에서 40km나 떨어진 곳이었다.

다행히 귀가때는
제주시내까지 중대장님 차로 함께 갈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족들을 펜션에 데려다 주고, 40여분 걸려 모임 장소에 가다 보니 우리가 30분정도 늦었다.

미리 식사를 하고 있으라고 했더니,
다들 식사를 안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동기들이
중대장님을 뵙고,
거수경례를 할 줄 알았는데,
고개만 까딱하길래
이런 기압빠진 놈들 ! 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역시 우리가 나이를 먹었나 보다.
60이 넘으니 그려러니 해야지 하고 웃고 말았지만,
중대장님한텐 괜히 쑥스러웠다.

* 식사메뉴

- 갈치 조림
- 흙돼지 구이

요리가 먹을 만 했다.
그 중 특히 흙돼지 구이가 역시 제주도 흙돼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 제주도 흙돼지가 맛있는 이유

농산물검역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설명을 해주었다.

제주도 흙돼지는 대부분 제주도에서 출산한 돼지가 아니라,
덴마크나 뉴질랜드에서 출산한 돼지를 수입을 해서 키운다고 한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수입한 돼지를 키우는데,

유달리 제주도 흙돼지가 맛으로 유명한 이유는 두가지라고 한다.

첫째, 물차이라고 한다.
제주도 물이 제주도 흙돼지 양돈에 적합해서 그 질과 맛이 차이가 날 것이라고 한다.

둘째 심리적인 차이일 것이라고 한다.

관광지에서 먹는 맛 그리고 기대치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고 한다.

맛을 보니까
물의 맛이 제주도 흙돼지의 질과 맛에 영향을 끼쳤다는데 공감이 갔다.

차를 가지고 온 분,
새벽5시에 대구에 출장가야 하는 친구때문에,

나와 군대동기 세명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중대장님과의 추억이 안주거리가 되었지만, 다들 이해하니 행복한 술자리였다.

중대장님과 함께

고교동창 김태문 박진인

군대동기 고민영 ,서화찬, 오진보

7. 중대장님과의 술안주거리 추억

기억나는 저녁 술자리에서의 안주거리 추억 세가지

* 술마시기전 우유 한잔

대청도 선진포구항에 두세군데 술마실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중대장님이 오토바이 뒤에 나를 태우고 술마시러 가면,

꼭 먼저 들리는 곳이 있었다.

바로 구멍가게였다.

그 곳에서 우유 한 팩을 마시고,
식당에서 소주를 사주셨다.

대한민국 어느 군대에 중대장이 소대장에게 속버리지 않게 하고, 술 덜 취하게 우유 한잔 먼저 마시게 하고, 소주 사주던 그런 중대장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 빠다

당시엔 구타도 많던 시절이라,
소대장들도 선배기수나 중대장에게 쪼인트 까지거나, 빠다 맞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분이 워낙 호인이셔서  저에게 빠다는 물론 욕한마디도 안하시고 잘 대해 주시던 분이셨다.

* 오토바이 바람막이 파손

86.11월쯤 이었다.

이때 전군 중대급지휘관에게 순찰용 오토바이가 지급되었다.

오토바이 기념으로 소규모 파티가 있었다.

어느 일요일에
중대가 관리하는 대대 사격장으로 오라고 해서 걸어 갔다.

중대장,중대선임하사 이민수중사(부사관77기),중대장전령, 소대장  4명이었다.

선임하사가 집에서 닭고기 3~4마리를 고추장 양념에 절여 왔다.

깨진 슬레이트 조각이 그렇게 불판으로 좋은 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지나가다 깨진 스레이트 조각을 볼때마다 그때가 떠오르곤 했다.

소나무잎가지등으로 슬레이트에 있는 먼지를 대충 털고,
주어 온 나무가지에 불을 붙이고 불닭고기를 올렸다.

슬레이트 골을 따라 기름기가 빠진 불닭볶음은 환상 그 자체였다.

태어나 처음 먹어 보는 환상의 맛이었다.

제대후에 서울에서 본 춘천닭갈비였다.

10년쯤후엔 슬레이트도  발암유발 성분이 있어 야외에서 그 위에 절대 고기를 굽지말라는 경고 방송이 나오기도 했었다.

전령이 술을 준비했는데,
중대 px에서 4홉들이 소주 4병(각1병)이었는데,
그게 금방 떨어져 버렸다.
그때 술은 지금같은 2홉들이 술병이 아닌, 소주 2병분량 4홉들이 술병이었다.

중대장님이 나한테 가서
술을 더 가져 오라고 한다.

중대장님 오토바이를 타고 갈려는데,
술취해 시동이 제대로 안걸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임하사가 불안해서인지 자기가 걸어서 갔다 오겠다고 나섰다.
걸어가면 30분이상 걸리는
2km이상 거리였다.

그때 시동이 걸려
내가 선임하사를 뒤에다 태우고 같이 부대를 향했다.

2km쯤 가다가 커브를 돌아 부대방향으로 꺽는데,

길 모퉁이에 쌓여 있는 모래에 미끄러져 밭으로 날아 갔다.

얼른 일어나 오토바이를 세우고 살펴 보니,
무릎 바람막이 부분이 깨졌는데 다행히 금만 가고 달려 있었다.

그때서야 선임하사를 보니,
3~4m쯤 떨어진 밭에서 쳐박혀 있다가,
일어나는데 입에서 모래를 내뱉고 있었다.
아 ! 큰일났네. 이빨 다 나갔겠네 하고 쳐다 봤더니,

챙피하니까 누구한테 얘기하지 마쑈하고 부대쪽으로 걸어 갔다.

다행히 앞 이빨이 그대로 인 걸 확인하니,
휴 !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나 보다는 열댓살은 더 많았었는데 엄청 미안했다.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말았다.

부대에 들어와
전령을 불러,
팔하나 가게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팔하나가게는 부대에서 200~300m 떨어진 구멍가게인데,

6.25때 상이군인인데,
대청도 부대원들의 우체국이자 ,
부모에게서 몰래 송금해온 돈을 보관관리 해주기도 하던 금고였고, 몰래 술한잔 할 수 있었던 만물상회였다.

강력본드나,
오토바이가 국방색이어서 청색테이프가 있는지 물어 보라고 했다.

PX에서 소주 4병도  준비하라고 하고,
소대장실 침대에 잠깐 누운다는게 술 취해 잠이 들어 버렸다.

누군가 깨워 일어나 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다.

아! 깜짝 놀래
큰일났다 하고
얼른 뛰어 나갔는데,
전령이
아까 중대장님이 왔다 가셨다고 한다.

아 !
디져버렸구나 하고,
벌벌떨면서
중대장실을 찾아 갔다.

기다려도
심부름 보낸 소대장이 안오고 ,
성질나서 걸어서 부대에 오면서 얼마나 화가 났을까 상상이 안되었다.

오메 ! 어쩐다냐 ,
아이고 죽겠네 겁을 엄청 먹고 두려워하면서 가기 싫은 발걸음으로 중대장실을 노크를 했다.

필승 !
중대장님 죄송합니다.
모래에 미끌려....

하는데,

괞찮아,
어디 안다쳤냐 ?

예, 괜찮습니다.

알았어.
가서 쉬어 하고는 끝이었다.

꽉 막혀  먹먹했던 숨이 ,
쑥 가라 앉아 담배부터 물었었다.

8. 숙소 귀가

인터넷으로 조회를 하니,
16km, 택시비가 13,500원 정도 나왔다.

택시를 불러 갈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갑자기 중대장님이 나를 숙소까지 태워 주고 가신다고 한다.

그럼 삥 돌아서 다시 와야 하는데,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하는데,
그져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었다.

마무리 할때,
제주도 남원읍에서 선친때부터 귤농장을 하는 친구가 ,

밭에서 오늘 수확한 천혜향,한라봉,귤을 섞어 한박스 가져왔길래,

우리가 디저트로 조금 먹고 종업원들 가져가라고 주자고 했더니,
다들 제주는 흔해 자주 접하니까 가져가서 가족들이랑 맛보라고 한다.

식당을 나서며 시간을 보니,
밤 9시이다.

동기 세명에게 물어 보니,
중대장님 차를 타고 함께 이동을 한다고 한다.

괜히 미안해서 앞을 쳐다 보니,
빵가게가 보인다.

빵을 조금 사서 중대장님 사모님께 미안한 인사를 부탁드리고 숙소에 도착을 했다.

귤상자를 어깨에 메고 숙소에 도착하니,
마당에 귤나무가 있는데,
커다란 귤이 두개 떨어져 있어 얼른 주었다.


하귤이라고 하는데,
5월에 먹는 귤이어서 하귤이라고 하고,
지금은 쓰고 셔서 못먹는다고 한다.
떨어진 상태로 10여일 숙성되면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바람이 밤에 많이 불어 떨어진 것이었는데,
유자보다는 덜 셔서 먹을 만 했다.

형제들이 아직 한잔씩 하고 있어서 합류를 했다.

이미 취해 있었는데,
그 후엔 기억이 없다.

숙소에 10시경에 도착했는데,
다음날 얘기듣기론
2시까지 악쓰고 떠들며  술을 마셨단다.

제수씨가
다음날 아침에
집사람에게 위로를 한다.

" 형님 ! 존경스럽습니다.
매일 이 뒤치닥거리를 30년 넘게 해오시다니 "

이런 !
다들 웃는데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술주사 없다고 변명할려는데
필름이 끊겨 기억이 없다.

두고 두고 나를 놀릴 것만 같았다.

여행 1일차
더 마 파크, 카멜리아 힐 앨범
https://band.us/band/8780373/album/70708617

밴드-모임이 쉬워진다

밴드는 그룹 멤버와 함께 하는 공간입니다. 동호회, 스터디, 주제별 모임을 밴드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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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둘째날 2.19(일) 제주도 여행

* 아침

미리 택배로 보내 온 소꼬리 곰탕 국물에 끓인 떡국이 해장에 좋았다.

어제 저녁 안주거리중 남은 문어숙회가 있어,
해장 한잔 ! 다들 웃으며 건배를 하니 숙취가 깼다.

* 보리빵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는데,
중대장님이 류중위하고 나하고 이것 먹으라고 사장이 주더라 하며 빵을 두개 보여 주는데,

뭔말인지 이해를 못해 대답을 못했는데,

박스를 하나 보여 주면서 가족들이랑 맛보라고 하신다.


어제도 떡을 한박스 주시더니,
오늘은 보리빵을 한박스 선물을 주셨다.

초등학교 다니는 애들이 특히 좋아 해,
아침부터 기분이 상쾌했다.

* 에코랜드 기차 관람

에코랜드는  30만평의 원시림을 기차로 체험하는 테마파크이다.

4.5km 구간을 기차를 타며 숲을 구경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

숲은 각각 4개의 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차를 타고 간이역으로 내려 관람할 수 있다.

2번째의 역에
고교친구인 김태문친구가 역장으로 있어 찾아 갔더니, 역장실에서 한방꽃차를 한잔 타주어 구수한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았다.

즐길거리가 다양했다.
보트, 디스커버리존, 돈키호테와 풍차, 정원, 수상데크, 말 농장등
멀리 무슨 호텔도 있는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겨울이라 볼 수 없는 초록  원시림 숲과 드넓은 정원 꽃밭이 아쉬웠고,

갑자기 일기예보와 안맞게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 구경을 제대로 못하고 얼른 나와야 했다.

이곳은 가족들끼리 도시락을 싸가지고, 하루 종일 천천히 즐기면 더 좋을 것 같은 공간이고,
짧은 시간에 관람하기에는 드 넓은 공간이었다.

* 점심

원래 계획은 해물 전골 이었는데,

중대장님이 갈치조림은 어떻느냐고 의견을 물어 그곳으로 갔는데,

얼리지 않은 제주도 갈치여서 인지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다행히 중대장님과 합석했지만, 술안주로도 제격인 갈치조림에, 운전때문에 우리끼리만 마시니 많이 미안했다.

* 스카이 워터 쇼

시원시원한 다이빙 쇼였다.

처음 시작은
그져 그런 쇼인 것 같았다.

우크라이나 무용수의 머리채를 묶어 공중에서 빙빙 돌며 춤을 추는 묘기를 선보이는데,

떨어질까봐 불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 안끄럽기도 해서,

사진 한장을 찍을려고 핸드폰으로 각도를 조정하고 있었더니,

어느새 직원이 와서 사진을 못찍게 한다.

딸내미와 집사람의 막무가내 지천에 창피하기도 하고,
짜증이 날려고 하는데,

흥겨운 음악에 맞춰
바닥에서 물줄기들이 솓구치더니,

단체 다이빙이 시작된다.
뛰어 내리고 오르고 ,
올림픽경기에서나 보던 다이빙자세들이 나온다.

한눈 팔 정신이 없이 보다 보니 50분의 공연시간이 끝나 버렸다.

알고 보니 국가대표출신들이 많단다.

시원 시원한 공연이었다.

* 분재공원

다이빙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누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화장실 바로 옆에 분재 공원이 있는데 입장료 받는 사람이 없어 무료라고 한다.

혹시나 하고 가봤더니,
입장료가 2,000원인데 아마 겨울이라 관람객도 없고 통제를 안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소사나무 분재, 소나무 분재가 있었다.


소사나무를 볼때마다 군대생각이 난다.

소사나무는
거친 돌산이나 섬, 바람이 많은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나무인데 분재로 많이 애용하는 나무이다.

백령도 수색대는
86년 10월말에 김포,포항에서 조교,교관요원으로  대원들이 차출되어 부대 창설을 준비했었고,

6여단 백령도, 대청도에서 일부 수색대 지원병력들이 1차로 합류를 해서,
87.1.5일에 부대를 창설하였다.

6여단 수색대 1차 수색교육이 (87.4월~87.8월) 끝나고 얼마 안되어,

87년 가을경에
부대가 창설된지 얼마 안되니까 ,

부대 환경검열이 해군본부에서 나왔었다.

백령도는 육지가 아니어서,
화원에서 꽃을 사다가 꽃밭을 조성하거나, 조경수를 사다가 심을 여건이 안되었다.
물론 육지였다고 해도 군대에서 돈을 주고 사다가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겠지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부대 뒷산에서 소사나무를 캐다가 심자는 것이었다.

매일 야전삽과 톱을 가져 가서 개인당 두그루씩 캐오게 해서,

본부 막사 건물 및 운동장옆 중대장실과 상황실 건물 주위를  빙둘러,
100여개이상 소사나무 분재 화원(?)을 조성했었다.

환경파괴니 이런 거창한 것은 당연히 생각을 못하던 시기였다.

만약 그 분재들이 살아남았다면 ,

지금쯤 이런 멋진 분재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핸드폰에 몇장 담았다.

* 성산 일출봉

점심을 먹고 나니  바람이 더 거세게 불었다.

차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일기예보를 믿은 형님은 너무 춥게 입어 차에 있기로 했고,
어린 애기때문에 조카사위도 차에 있고,
매제도 감기몸살로 차에 있는 등 ,
21명중 14명만 같이 성산일출봉을 올랐다.

매표소에 다가 가는데,
누군가 인사를 한다.

막내 여동생 친구라는데 ,
9년후배인데 시골 옆동네 살았었는데,
제주도에 시집을 와서 산다고 한다.

친구가 여행왔다고 인사차 오면서, 귤한박스,비트도 한박스 가져왔단다.

인사를 하면서 제주도 살 만 하냐고 물어 보니,

싫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너무 바람이 많단다.
실감은 안되지만 삼다도라는 이름이 그냥 생긴게 아닌가 보다.

성산 일출봉에 올라가는데,
여기 저기서 중국말이 들려  되돌아 보게 되는 중국관광객들이 많은 찾는 유명 관광지였다.

182m 밖에 안되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다들 힘들어 한다.


화산인 성산봉은 커다란 사발모양의 평평한 분화구가 섬 전체에 걸쳐 있다. 3면이 깎아지른 듯한 해식애를 이루며, 분화구 위는 99개의 바위 봉우리가 빙 둘러 서 있다.

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 하여 성산이라 하며, 해돋이가 유명하여 일출봉이라고 한다.

넓은 분화구 안에는 풀밭이 펼쳐져 커다란 원형 경기장을 방불케 한다.

이 풀밭은 예로부터 성산리 주민들의 연료 및 초가지붕을 이는 띠의 채초지(採草地)와 방목지(放牧地)로 쓰여져 왔기 때문에 나무는 거의 없고 억새·띠 등의 식물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위에서 둘러 보는 경치는 환상적인데,
너무 바람이 불어 바로 내려 가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14살짜리 종손녀가
해녀의 집에 내려가고 싶어하는데,
어른들이 내려갔다가 올라올 일이 끔찍해서 다리 아프다고
선뜻 호응을 안해주니까,
고모들을 찾으며 같이 가자고 한다.

일행들이 전부 ,
그래 같이 가자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동생이 저 해녀의 집에 홍해삼 있으면 한잔 산다고 해서
기대하고 갔더니,
오늘 따라 해삼이 다 팔렸다고 해서 소라만 쳐다 보다 다시 올라 와야 했다.

* 비자림

숙소에 갈려다가,
누나가 너무 좋은 곳이라고 주장을 하여 일정에 없는 비자림숲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수령이 300~600년 된 비자나무 2,500여 그루가 모여 사는 숲이다.  

이 비자림은 단일 종류의 군락림으로는 세계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규모이고, 인공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 자연 발생적 숲이기에 더욱 귀중한 자연 유산이다.

물론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덩굴등으로 숲이 망가지고 나무들이 고사한다고 한다.

1년 관리비가 3억원정도 소요되는데,
작년 입장객이 12만명이라고 한다.

붉은 화산토가 깔린 입구를 따라 숲으로 들어서면 신선하고 촉촉한 느낌이다.

숲길은 큰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어 누구나 부담없이 거닐 수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숲을 파고드는 산책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래된 비자목들을 볼 수가 있다.

숲길을 걸으면서
동생들에게 비자가 뭔지 아냐고 물어 봤더니,
다들 알고 있다.

시골 불갑산에 가을엔  할아버지 따라 비자를  주으러 많이 갔었다.

비자열매를 큰방 바닥에 말린다고 펼쳐 놓은 장면들을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비자열매는 떫은데 어렸을때 구충제로 자주 먹었던 것 같다.

전라도 지역의 산에는 백성들의 구충제를 얻기 위해 일부러 관에서  비자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수령이 몇백년된 비자나무에 놀라며 사진한장을 찍는데,


동생이 불갑사에는 이보다 훨씬 큰 비자나무가 몇그루 있었는데,
본사인 백양사에 무슨 기둥을 세운다고 몇년전에 싹다 베어가 버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욕이 나왔다.

걷다 보니
비자열매라 칭하는 이유를 설명한 푯말이 있다.


비자나무의 잎이
非 자를 닮아서 비자나무라 칭했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 진다.

숲길을 끝까지 산책할려다가,
너무 늦을 것 같아 이제 되돌아 가자 하고 중간쯤에서 되돌아 왔다.

그래도 웅장한 비자나무숲의 감명은 오래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아마 이 숲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숲일 것이다.

10. 환상의 회 파티

숙소에 가는 버스안에서,

동생이 자기 군대 동기가
일부러 우릴 줄려고 갯바위 낚시를 하고 있는데,
벵에돔을 얼마나 잡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큰 기대를 갖고 빨리 전화해 보라고 했더니,

벵에돔은 한마리도 못잡았고,
부시리만 하나 잡았다고 한다.

에이 ! 하고
다들 실망해 한다.

낚시하고 있는 모슬포에서
숙소가 있는 남원까지 한시간 거리여서,
다들 미안하니까 오지 마라고 한다.

숙소로 가는 도중에
하나로 마트에 들렸는데,

어제 형제들에게 질렸다고,
소주를 좀밖에 안샀다고 해서 투덜거렸다.
그래도 20병 정도는 된단다.

삼겹살도 듬뿍 몇접시 사고, 광어회도 3접시를 샀길래,
왜 했더니,
낚시가 제대로 안잡힐 지 모르니까 샀다고 한다.

저녁에 동생 사돈분들이 펜션에 인사차 들리신다고 해서 준비했단다.

이 분들은 제주도 사는 친구의 권유로 놀러 왔다가 제주도에 몇년전에 정착을 하셨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니,
펜션사장님이 숯불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동생이 우체국을 다닐때,
노조 지회장 모임때 자주 어울렸던 친구라고 한다.

삼겹살을 철망위에
굽다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분업을 하기로 했다.

방안에서 가스렌지에 초벌 구이를 해서 주면,
마당에선 숯불에 구어 전달을 하니 수월했다.

굽다가 집게로 집어 먹는 삼겹살 맛에 여행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종이컵에 가득 부은 소주가 달콤했다.

한잔하고 있는데,
차가 한대 도착했다.

동생 군대동기가 도착했다.

차에서 고기를 내리는데,
부시리 9자 대물이다.
와 !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친구는
해병대 병564기로 군생활하다가,
상병때 부사관으로 지원을 해서,

부사관 190기로 원사로 몇년전에 정년퇴직후,
제주도에서 낚시에 빠져 살고 있다고 합니다.
1주일에 5일은 낚시를 한다고 한다.

차 천정에 릴낚시가 10대 설치되어 있고,
트렁크 문짝엔 도마박스를 별도로 설치해 보관하고 있었다.


도마도
광주 광산구까지 가서
200만원을 주고 편백나무 도마를 15개 크기별로 제작해 왔다고 하는데
대단한 정성이더군요.

갯바위 낚시로 잡은 부시리 9자 대물입니다.



1m × 40cm 도마위에 회를 떠서 진열해 놓은 멋진 장면에 감탄해,
다들 핸드폰으로 사진찍기에 정신이 없었다.


사진위의 광어회접시는
낚시로 고기 못잡을 것이라 생각하고
하나로마트에서 미리 몇접시 구입한 회다.

그리고 야외 숯불에 고기 굽다 남은 잔불에 30분 정도 은은하게 익힌 머리 구이가 맛은 더 별미이더군요.


중간에 동생 사돈분들이 오셔서,
삼겹살과 도마회를 상에 차려드렸더니,
놀라 박수를 치고 사진부터 찍으신다.

마시다 보니 술이 떨어졌는데 ,
펜션 사장님이 6개들이 한팩을 가져오셨다.

기분에 취하니 술이 술술 잘도 넘어 간다.

손님들이 가시고
방에서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좀있다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여조카가 분위기 메이커였다.

밖에서 한잔하면서
유리창너머로 구경하다가
방으로 들어 갔다.
윷놀이판을 보는데,

영화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낙이 없고,
그냥 방바닥에 던지는
작은 윷이었는데,

상대방 말은 두개를 업어,
돌고 돌아 제일 마지막에 입궁해서,
이제 도만 나와도 끝이고,

조카네는 말이 두개인데,
하나는 윷이나 모가 나와야
끝나고, 말하나는 걸이 나와야 끝나는 곳에 두군데에 나뉘어 있었다.

낙이 없으니,
상대방이 윷을 던졌는데,
아무거나 나오면 끝이었는데,

느닷없는 빽도가 나와버렸다.

그래도 희망은 아직 있었다.

상대방이 도를 하면 말이 잡히는데,

도만 안나오면 ,
상대방이 말이 두군데로 나뉘어 있어서 희망이 있었다.

이때
조카가 윷을 던졌는데
모가 나왔다.

야 !
짝짝짝짝
다들 함성과 박수를 치는데,

잠깐 ! 잠깐 !
형님이 판을 잠깐 멈췄다.

질 것 같으니
판을 깽판친다냐 하고 쳐다 보니,

여기서
마지막으로
판을 더 키워야 한다면서,
만원씩 더 걸 사람 !
하고 분위기를 띄운다.

말판을 보니
개만 안나오면 되었다.

도가 나오면
상대방 말을 잡고,
걸이면 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아사리판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조카가 윷을 던졌다.

야 !
하하하 !
히히히 !
짝짝짝 !
다들 홀딱 홀딱 뛰고 난리가 났다.

도가 나와 상대방 말을 잡아버려 판이 끝나버렸다.

우리 집안에 타짜가 생겼다.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한잔 하자 하고 자리를 잡았는데,

마시다 남은 술이 금방 떨어졌다.

형님이 내가 마트갔다 올께 하고 밖으로 나갔다.

11시가 넘었는데,
여기 지리도 모를텐데 하면서도 여운에 그대로 술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5분쯤후에
슈퍼가 바로 앞에 있네 하면서 ,
품에서 술병을 하나 꺼낸다.

진짜인 줄 알았다.
감사합니다 하고
술병뚜껑을 여는데,

동생이 아까 밖에서 마시다 남겨 놓은 것 같은디 한다.

담배 피우러 나갔다가
술병을 보고 들고 들어 온 것인데,
슈퍼에 갔다 온 줄 알았다.

뭐가 됐든
빽도의 여운에 다같이 웃을 수 있어 참 행복했다.

그 하나만으로도 가족여행의 큰 보람이다.

다음날에도
누군가
영화같이
거기서
어떻게
빽도가 나오냐 하면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여행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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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모임이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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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행 마지막 날 2.20(월)일 제주도 여행

* 쇠소깍

처음 여행계획에 없었는데,
막내 여동생이 ,

멋진 곳이라고 홍보가 많이 되어 있다고 가자고 했다.

좋다고 하고,

그런데 여행계획을 바꿀려면
미리 표를 예약해야 한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

성인 11장, 소인 4장이 있다고 해서 우선 그거라도 예약을 하자고 했다.

쇠소깍은
카약 관광,
테우(전통나룻배)관광,
도보 관광이 있는데
카약은 1인당 20,000원,
테우는 대인 1인당 8,000원,
소인은 5,000원 이었다.

만약 표가 없다면,
쇠소깍을 도보로 구경해도 경치가 좋다고 하니,
표를 정 못구하면 몇몇은
도보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행사에 연락을 했더니,
그럼 아트서커스를 빼겠다고 하시길래,
이왕 계획한 것
마져 같이 하기로 했다.

동생이 또 만장굴을 조회했더니,
돌이 떨어져 일시적으로 폐쇄를 했다고 해서,
당초 여행계획에 쇠소깍만 추가하기로 했다.

어제 쇠소깍에 문의했더니,
8:30분까지 오면 추가 표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좀 일찍 서두르자고 했다.

7:50분까지 버스가 오기로 했는데,
월요일이라 차가 막혀 좀 늦으신다고 문자가 왔다.

8:20분에 차가 와서 차에 짐을 싣고,
펜션 사장님과도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랐다.

출발하기 전에
중대장님이
대표로 형님한테 드린다며 선물을 하나 또 준비하셨다.

제주도 허벅주인데,
전통 물을 담아나르는 허벅(물허벅)에 담았다고 해서 허벅주라고 한단다.

감사합니다 !
짝짝짝 !

매표소에 도착하니
8:40분,
성인 5장을 추가로 끊었다.

그런데
소인표가 4장인데,
1장이 애매해서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조카에게 ,
너는 워낙 동안이라 마스크 쓰면 모를거야 하고 시치미를 떼자고 했다.

구명조끼를 받으러 가는데,
직원이 유달리 그 조카를 보는 것 같아
양심이 좀 찔리기는 했다.

쇠소깍은 효돈천(孝敦川) 하구를 가리키며, 이곳은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형성한 곳이다.

쇠소깍이라는 이름은 제주도 방언이다. 쇠는 효돈마을을 뜻하며, 소는 연못, 각은 접미사로서 끝을 의미한다.

계곡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뛰어난 비경을 가진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도에서 효돈마을을 딱떼어서 보면
마치 소모양인데,
쇠는 소의 제주도 방언이어서 ,
그래서 쇠소깍이라고 한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비가 많이 오는데,
화산으로 인한 현무암지질로 땅속으로 대부분 스며들어,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를 만든곳이다.

많은 빗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바닷가에서 흘러 나온다고
책에서만 봤었는데,

바로 이곳 쇠소깍에서 체험할 수가 있었다.

줄을 이용해 테우를 끄는 체험 이었는데,

중대장님이랑 같이 타면 좋은데,
안내인이 정원이 다 차있고,
구명조끼를 안입고 있어
안된다고 해서,
우리가 즐기는 30분 동안
배타는 곳에서 기다리셔야 해서 좀 미안했다.

안내인이 중간에 우리들 사진도 찍어 주고,
기암절벽을 설명을 해주는데,


갑자기 저기 곰한마리가 있다고 하는데,
다들 아 ! 하는데 나는 엉뚱한 곳을 보다가 못찾고 한참후에야 ,
야 ! 저기 꼭 사람 얼굴이네 .
눈도 있고 코도 있고 했더니,
안내인이 핀잔을 주고 다들 웃는다.


쇠소깍 윗부근까지 가면 더 많은 경치를 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그 위 계곡은 메마른 건천이고,
지하에서 나오는 물힘때문에 더이상 위로 올라가지를 못한다고 금방 원위치 하니 다소 아쉬웠다.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면 천천히 둘러볼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다음 공연 시작 시간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 아트 서커스

공연장에 공연시작 시간후에 도착을 했다.

5분정도 늦은 것 같았는데,
다행히 10분도 정도 늦게 시작을 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미리 앉아 있어 ,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봐야 했다.
더군다나 화장실을 미리 다녀 오느라 일행들을 놓쳐서 나만 한쪽에서 떨어져 봐야 했다.

중국기예단의
환상적인 쇼도 볼만 했고,
관람석에 올라와 펼쳐지는 변검쇼도 좋았다.

중간에
막대풍선을 가져와 두 공연자가
어린이 관람객에게 풍선인형을 만들어 주는 것도 더 호감을 가지게 했다.

마지막 풍선을 누구 줄까 하다가,
두개로 나누어 주길래,
어 ! 저렇게도 되는가 보네 했는데,
슝~~하고
순간 어린애 손에서 풍선이 멀리 날라가 버렸다.

하하하
다들 손뼉치며 즐거워 하는데,

으앙 ! 앙~~~앙 !
누군가 울길래 더 즐거워한다.

그런데
우는 애를 데리고 나가는 엄마를 보니 조카이다.

이놈들이 하필이면 내 종손녀를 울리다니...

그 모습에 짠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공연모습이 좋아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

처음부터 한컷씩 찍었으면 좋았을텐데,
어제같이 창피를 안당할려고 그냥 앉아 있었더니 앞부분을 못찍어 미련이 더 생겼다.
그래서 그냥 말았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오토바이쇼였다.
네대의 오토바이가 펼치는
쇼는 부딪힐까봐 조마 조마하면서 가슴졸이게 하는 멋진 쇼였다.

막혔던 가슴이 속시원하게 뚫리는 쇼였다.

쇼가 끝나고 나오면서
인사할려고 서있는 공연자중에서
소년 공연자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이제 10살이나 먹었을까,
벌써부터 이렇게 힘들게 타국에서 공연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얼마나 힘들게 연습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돈도 벌고 ,
어렸을때부터 연습을 해서 그 방면에서 최고가 되는 방법이니까, 나름 이게 그쪽 세계에서는 최고의 바른 길인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있는 변검공연자에게도 악수를 청하고 사진을 한장 담았다.


주차장에 나왔는데
버스가 안보였다.

찾다가 전화를 드렸더니,
5분만 기다리라고 한다.

버스가 도착해서
출발하자고 할려는데,

중대장님이 우리 공연하는 중에 ,

근처 어느 매장에 가셔서 한라봉 두박스를 사오셨다.

아침에 형님한테만 술선물을 했더니,
미안해서 누님 것하고, 내것이라며 두박스를 사오셨다.

아침에도 술을 선물해 주시더니,

또 선물을 준비해 주셔서 감사하면서도 많이 미안했다.

지금이 한라봉이 맛있는 때이지만 ,한라봉중에서 제일 크고 맛있는 것을
특별히 구입하신 것이라고 하신다.


감사합니다.
다같이 박수~~

여행 3일째 앨범
쇠소깍, 아트서커스,
용두암,이호테우해변 앨범
https://band.us/band/8780373/album/70740948

밴드-모임이 쉬워진다

밴드는 그룹 멤버와 함께 하는 공간입니다. 동호회, 스터디, 주제별 모임을 밴드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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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이제 공연시간때문에 서둘러야 하는 촉박한 일정은 끝나,
점심식사도 천천히 하고,
몇군데 관람을 하고, 기념품도 몇가지 사고 공항에 가기로 했다.

식당에서 방금 제과점에서 산 조카 류슬기의 26번째  생일축하 케익에 불도 붙이고, 다같이 축하노래도 불렀다.

생일 축하합니다 !
짝짝짝 !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옆에서 있던 형님도 오래전에 여행중에 생일을 맞았었는데
당시에 초코파이에 성냥을 꽂아 축하해 주던게 생각난다고 하셨다.

점심은
1인당 20,000원짜리 한정식이었다.

간장게장도 입맛에 맛고,
옥돔구이도 좋았는데,
길쭉한 튀김이 긴 접시에 담겨져 있길래 이게 뭐지 하다가,

다들 튀김이야,
무슨 야채나 소세지 튀김인가 보다 하다가,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갈치튀김이라는데,

속살은 안보여 에이 하고 말았다.

그래도 대체적으로  나름대로 괞찮은 점심이었지만,

좀만 마시라고 남아 있는 소주한병을 반납해버리는 누나때문에 ,

에이 ! 저쪽 동생들 같이 떨어져 앉았어야 했는데,

저것들은 두병인데 하고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점심을 먹고 시내를 벗어나는데,

갑자기 중대장님이,

아 ! 내가 실수했다.

예 ?

내가 제주도 기념으로 복권 한장씩 사자고 했어야 했는데, 그냥 제주도 떠나네 하신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오늘 토요일이면 한장씩 사러 가시지요 했더니,

오늘 월요일이잖아 하신다.

며칠 술독에 빠져 놀다 보니 세월가는 감각이 없었다.

고개를 요리 저리 둘러 봐도,
복권방이 안보이길래
나중에 하시지요 하고  포기해버렸다.

설마 그 주에 제주도에서 1등이 되지는 않았겠지...

* 도깨비 도로

전국에 있는 도깨비도로는 많지만,
그 중 제주도 도깨비도로가 가장 유명하다.

도깨비도로는 도로와 주변 환경과의 착시현상으로 오르막길/내리막길이 겉보기와 반대로 된 도로를 말하는데, 이름은 도깨비에서 따왔다. 

도로에 도착하니
앞 승용차에서 사람들이 내려 생수병을 굴리고 물을 도로에 붓고 있었다.

눈에는 착시로 언덕길로 보이는데,
실제는 내리막길이다.

중대장님이
기어를 중립으로 놓았다고 한다.
좀있다 슬슬슬 차가 미끄러 내려 갔다.

내가 애들때문에 내려서 구경하시죠 했는데,

바로 뒤에 버스가 도착해 버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앞에는 오르막길로 보이는데,
지금 기어를 중립으로 놓으면 ,
언덕길이라면 뒤로 밀려야 하는데,
앞으로 갑니다하고 차에서만 시험하고 ,
그냥 가시죠 하고 말았다.

어른들에게는 상관없지만,
뒤에 앉아 있는 어린이들은 무슨 말인지 모를 것 같아 좀 아쉬웠다.

* 기념품 구입

오메기떡을 11개 구입을 했다.
하나씩 가져가 선물하기로 했다.

떡집 바로 옆가게를 보니
보리빵집이 보였다.

동생이 선물한다고 귤도 한박스 산다고 했었는데,
중대장님이 주신 한라봉을 선물로 가져 가고,
나머지는 공항에서 나누기로 했다.

* 용두암

떡을 구입하고
이호태우해변을 가는 길에
도로 간판을 보니,
용두암 2km 라고 써있었다.

잠깐만요.
중대장님 용두암들렸다 가면 안되겠습니까 ?
멀다면 모르는데 바로 2km 옆에 있다는데요 라고 여쭸더니,

그러자고 하신다.

바다를 보니 역시
제주도라는 실감이 들었다.

제주도시내에 숙소가 있었던 팀들은 이 해안도로를 몇번씩 다녔었는데,
우린 남원쪽이어서 제주도 해안도로를 처음 구경한다고 하신다.

차에서 내려
용두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해안 계단을 내려가는데 다들 흥겨워 한다.  


역시 제주도는 바닷가를 가야 제대로 된 여행이지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바닷가를 구경하고
차에 올랐다.

주차장을 나가는데,
우리가 탄 버스 번호가 주차장에 들어올때 카메라에 자동으로 안 찍혀 체크되지 않아,

주차비를 내지 않고 그냥 공짜로 나오는 것도, 이게 왠 횡재야 즐거움이었다.

* 이호태우해수욕장

멀리 거대 말 형상 등대가 두마리 서있다.

모두 차에서 내려 바닷가에 갔지만,
너무 바람이 많이 불어
오래 있지를 못하고 바로 차에 타야 했다.

바닷가에서 먹자고
귤이랑 음료수도 따로 준비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딸내미가
여기 바닷가에 말이 세마리가 있네 한다.

둘러 보고 두마리 밖에 없는데 했더니,

여기 나 있잖아 백말.

하하하 !
딸내미가 백말띠이다.

* 제주공항 출발

제주공항에 가는 길에
중대장님이 쪽지를 하나 주신다.


여행경비 명세표이다.
처음 19명 계산하고,
식비와 관람비를 여행사계좌에 입금했었는데,

인원이 2명늘고,
오메기떡값때문에 추가 입금금액이 발생했다.

누나와 여동생에게 전달해서 조치를 했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오후 4시였다.

일부러 카트를 찾아 바로 앞에 주차를 해주셨다.

중대장님이랑 마지막 단체사진을 찍었다.


짐을 내리고
다같이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중대장님께 마지막 거수경례를 드렸다.

공항에 들어가
카트를 반납하고,
귤이랑 한라봉 그리고 음료수등을 나누었다.
마침 비닐팩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짐들을 전부 나누고,
비행기 출발시간들이 다르니까
미리 인사들을 하고,
지하에 가서 면세점을 구경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게 담배가게였다.

1보르에 45,000원인데,,
35,000원이니 20%이상 싸다.
담배를 피울 때는 얼른 한보르 살텐데 관심이 안생겼다.

대충 둘러 보고 개찰구쪽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한참후에 딸내미가 인형을 두개 사왔다.
하나는 종손녀를 준다고 한다.
생각하는게 대견해서 고마웠다.

내가 제일 먼저 타야 해서 인사를 나누고 개찰구를 향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사람들이 많아 기다리다가 우리 줄은 세번째 순서에서 비행기에 올랐다.

비즈니스석엔
두명 두명씩 통로를 사이에 두고 두줄에 앉아 있었다.

우린 3명, 3명씩이고 ,
한참을 오르내리는데 기다려야 하니,

비즈니스석은
먼저 타고,
넓게 편하게 가고,
먼저 내리는데,

비행기값이 얼마나 차이날까 궁금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대한항공
일반석(편도) 137,100원,
비즈니스석(편도) 194,100원
차이이다.

국내선이라 금액차이가 적어 선호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았다.

드디어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틀전에 올때는 난기류가 심해 비행기가 많이 흔들려 딸내미가 힘들어 했었는데,
오늘은  제주지역에 바람이 많이 불어 그때 보다 더 심할까봐 걱정되었는데,
오히려 평온했다.

평온한 비행기에서
나눠준 이어폰을 끼고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감상하다가,

갑자기 여행중에 중대장님과 나누었던 여러 얘기들이 생각났다.

12. 중대장님과의 군대시절 추억

* 한밤중 비상

운전을 하시다가
중대장님이,

야 ! 류중위
그때 한밤중에 비상걸렸던 것 기억나냐 ?

예, 기억납니다.

야!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때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혹시 이유를 아냐 하고 물어 보셨다.

그때 중대장님이 기분이 엄청 안좋으셨던게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마
1986년말로 기억된다.

그 날은 중대장님 생신이어서,
중대선임하사와 소대장이 관사에 저녁초대를 받았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저녁 9시경에 5분대기 출동 비상전화가 왔다.

완전무장하고,
81mm 부대옆 연병장에 집합하라고 한다.

제가 먼저 뛰어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하고 일어섰다.

관사와 부대는 300~400m 정도 밖에 안떨어져 있었다.

상황실에 가서 이유를 물어 봐도 몰라,
대대상황실에 확인해 보니 무조건 중대장 포함 완전무장 출동이라고 한다.
전 대대출동이라고 한다.

85년 이웅평소령 미그기 귀순때 빼고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비중대라 5분대기소대를 운영했지만,
중대장도 같이 출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중대장님 관사에 전화를 드리고 중대원들이 먼저 출동을 했다.

우리 중대가 제일 먼저 도착하고,
81mm 부대,
전차부대,
9중대 해안방어 소대들도 도착을 했다.

그 사이에 중대장님도 도착을 하셨다.

그런데
작전장교나 대대참모들은  한명도 안오고,
9중대장도 오지를 않았다.

무전병을 통해 무슨 상황인지 계속 체크를 해도 ,
자기들도 모른다고 한다.

그럼 왜 전부대 비상을 걸었냐고 물어 봐도 아무도 모르고,
여단본부에서 전부대 완전무장 출동이라고 해서 비상을 걸었다고만 한다.

상황장교가
상황을 파악해서
다시 전파를 해야하는데,
우선 비상만 걸어 놓고 다른 조치를 안하고 대기하는 상태가  
두시간 정도 되었다.

선임 장교이셨던,
10중대장님이 내가 책임 질테니까 각 부대 상황종료 해산, 부대복귀하라고 하셨다.

뭔일인지도 모르고 출동했다가,
투덜거리며 부대에 복귀를 했지만,
9중대장은 해사출신이라 대대장을 통해 무슨 일인지 내막을 알고 출동을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안 좋았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 가고,

다음 날 저녁까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우리 중대에서 대대 상황실에 파견나가 있는 중대원을 불렀다.

소대장이 부르면 안먹힐 것 같아,
거짓말로 중대장님 호출이라고 부르라고 중대 상황병에게 얘기를 했다.

대대본부는 우리 중대와 500m정도 떨어진 산 꼭대기에 있었다.

얼마후에 상황병이 도착했다.
계급은 상병이었다.

처음엔 부드럽게 얘기를 했다.

처음 이 친구가 우리중대에 비상출동을 걸었기에
그 이유를 알자고 한 것이었는데,

대답하는 태도가 좀 눈에 거슬렸다.

몇번을 물어 보다가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이친구한테 너무 미안하다.

이 친구도 이유를 모르고,
상황장교 지시에 따라 그랬을 뿐이었는데,

우리 중대 파견병이라는 이유로,
나한테 호출되어 저녁에 많이 혼났다.

그 이유를 계속 모르고 있다가,

2년쯤후,

내가 군입대후 22개월만에 첫 휴가를 나간 88년 2월에,

동생이 해병대 부사관으로 입대를 했다고 해서 ,
포항 1사단 72대대에  면회를 가서,
저녁에 동생을 불러 저녁을 먹고, 동생은 부대에 복귀를 하고,

나는 동기들이랑 한잔하고 동기들 장교숙소(BOQ)에서 잠을 자기로 했었는데 , 그 얘기가 나와 그때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86년말에 해병대에 사망사고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포항의 어느 부대(연대)에선 한달에 5명이나 죽는 사고가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해병대사령관(당시 해군제2차장)한테 한소리들은 1사단장이
그날 저녁 대대장이상 긴급지휘관회의를 소집했다고 한다.

지휘관들이 부대관리를 못한다고,
따끔하게 교육을 시키겠다고,
포항 1사단 남문앞에 지금 집합하라고 했다고 한다.

부사단장(준장)이 사단장님 진짜이십니까 하고 만류를 할려고 했더니,

사단장이 갑자기 차고 있던 권총을 빼들고,
부사단장 머리에 겨누면서,
너 이새끼 너부터 죽을래 했다고 한다.

남문앞 논에 집한한 대대장이상 지휘관들을,

연대장들은 사단장이,
대대장들은 부사단장이

앞으로 취침 !
뒤로 취침 !
좌로 굴러, 우로 굴러 !
포복앞으로를

날이 새어 부대원들이 출근할때까지 시켰다고 한다.

논바닥 흙탕물이 다 묻은 옷을 입고,
연대장, 대대장들이 부대에 출근을 했단다.

나중에 어떤 연대장은
더러워서 장군진급안하고 말겠다는 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해병대에서 두번째 서열인 1사단장이,

1사단 대대장이상 지휘관을 소집해서
긴급 지휘관회의를 하고,

남문앞 논바닥에 집합시키니,

1사단 상황실에서 이를 해병대 상황실에 보고 하게 되고,

해병대 상황실에서
예하부대 전해병대 비상을 걸게 된 것이었다.

멀리 떨어진 말단 부대에서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전부대 5분대기출동을 걸었던 것이다.

그 내막을 안
해사출신인 63대대장이나 9중대장은 파악한 내용의
상황전파를 안하고, 자기들은 출동을 안하고,
출동한 대대원들을 방치를 해버리고,
비사관출신 10중대장 이하 대대원들만 몇시간 동안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달밤에 떨며 체조를 한 꼴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중대장님은 어처구니 없어하시며 그랬었구나 하시며 씁쓸해 했다.

* 중대 60트럭 민가 추돌 및 가옥 전파

상황설명은 길어서 쓰기가 귀찮아 내가 예전에 썼던 글이 있어,
내 일기장인 블러그를 복사했다.

나머지
서로의 기억의 차이부분에 대해서만 부연설명을 한다.

https://m.blog.naver.com/jjryu000/222432480847

대청도 황금 재털이

☆ 대청도 황금재털이 ☆ 87년도초 대청도 해병대 63대대 10중대 소대장때 얘기 예비중대여서 별놈의 훈련...

blog.naver.com



중대장님이 말씀하시기를 ,
처음 마을에서 요구한게 현금배상이었는데,

134~164만원인가를 요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에 월급이 적어 그 큰 금액을 만들 수가 없었다.

당시 소위 월급이
15만원 정도였다.

돈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공병에서 시멘트와 나무등 건축자재를 전부 지원해 주고,

목수 인건비만 현금으로 주기로 했다.

물론
시멘트나 목재등 건축자재는 건물한채를 짓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제공해주면서 감안해 달라고 했었다.

현금을 인건비로 주기로 했었는데,

내 기억은

60만원
- 운전병 30만원
- 중대장 10만원
- 소대장 5만원
- 하사관 15만원
(5만원 × 3만원)

여기에
소대장이 일반하사 월급이 7,000원인가 밖에 안되어, 일반하사인 장하사 것을 2~3만원인가 대신 부담하기로 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아니야
나중에 내가 누님한테서 20만원을 빌려서 더 줬다고 하신다.

아마
공사중에 인건비가 추가로 든다고 ,
20만원을 더 요구했었는데,
중대장님이 미안해서 혼자만 부담을 하신 것 같았다.

그 내용이 기억이 날듯 말듯 했다.

이장과 합의서 쓸때,
중대장님이 소대장인 내가,
서울대법대 나와서 사법고시 합격해서
제대하면 바로 검판사 할 사람이라고 속이고,
합의서와 각서를 면전에서 작성하면서, 추후 엉뚱한 얘기나 토달지 말라고 협박(?)했던게 생각난다.

그런데
그 협박이 몇달후엔 무용지물이었나 보다.

청주가 고향인 이창경인가 운전병도 생각나고,
구미가 고향인 배구 잘하던 장진덕(?)하사도 생각이 난다.

소대선임하사 시켜달라고 중대장님한테 계속 조르던
161기 윤병지하사도 생각난다.

* 문제사병 관리

10중대는 예비중대여서인지,
중대장님이 호인이어선지 다른 부대에서 생긴 문제사병들을 전입을 받아 관리를 하셨었다.

아마 부대관리 능력이 뛰어나서셨을 것이다.

그 중에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소청도 11중대에서 문제가 생겨 10중대로 전출 온 친구였다.

후임들은 괴롭히고,
선임들에겐 찍혀 문제가 계속 되고,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대대장이 전출을 보낸 경우 였다.

나는 얼굴만 어렴풋이 생각나는데,

중대장님은 창원이 고향인 것과 이름도 기억하고 계셨다.

이 친구는 선임들한텐
꼴통이라고 욕도 많이 먹고,
후임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는데,

소대장과 면담때는 사고 안치고 제대하겠다고 계속 얘기했었는데,
병장이 되고는 어땠는지 내가 수색교육때문에 부대를 떠나  모르겠다.

큰 문제없이 제대를 했으리라 믿지만,
아마 후임들은 힘들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걱정도 든다.

중대장님과 함께 했던 3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고 안내 방송이 나온다.

언제 기회되면 그때 또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리라 생각된다.

혹시 서울에 오실때 연락주시면 그때 또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형제가족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항상 건강하시고,
형제가족들 모든 분들에게
늘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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