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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탈영에 대한 슬픈 추억

류종중 2023. 9. 8. 09:38

오늘 동기가 운영하는 연평도 탈영 유튜브를 보다가,

https://youtu.be/zRHrFI6--r4



내가 겪었던 백령도 탈영사건이 생각나 기분이 저녁내내 우울했다.

1988년 일이다.

신병이 자대배치 받아왔는데,
몸도 좋고 수색병과이다.

신병을 받고,
하루 이틀후에 전화가 왔는데,
동생을 잘 부탁한다고 한다.

우리 동기 000였다.

몇달이 지나,
수색교육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신병도 부대에 적응해서 가끔 물어보면 잘 생활하고 있다고 하고 얼굴표정도 밝았다.

2주정도 되었을때이다.

수색교육 2주째까지는
적응기간이라고 ,
체력단련 위주로 훈련한다.

급하게 몸을 단련한다고,
매일 뛰고, 체력단련을 하니 ,

평상시에 비해서 육체적으로 힘들다.

그리고

안보이는데서 맞기도 하고 기합받기도 한다.

이 2주만 지나면,
수영,스쿠버등 기타 훈련등은 악기만 있으면 견딜 수 있는데,

동기 동생이 너무 힘들었었나 보다.

훈련이 끝나고 저녁을 먹고 지나가는데,
누군가 나에게 오는데,
그 애였다.

교육 못 받겠다고,
퇴교하겠다고 한다.

훈련들어가기전에 힘들면 아무때라도 찾아오라고 얘기했었기에 나한테 얘기하기가 편했을 것 같았나 보다.

몇분을 설득을 했다.
좀만 참고 견디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견디라고 했다.

이때 동기하고 통화를 하고 퇴교를 시켰어야 하는 후회가 지금도 든다.

설득을 하다가,
니 형 얼굴봐서 바로 퇴교시키기도 그러니까 ,
좀 있다 다시 얘기 하자 하고 헤어졌었다.

어떻게 할까?
동기한테 얘기를 할까?
중대장한테 얘기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마 2~30십분정도 지나서였을 것이다.

병사옆에서 또 동생을 만났는데,
퇴교얘기를 계속한다.

좀만 기다리자고 했는데 그새 못참고 그런다고,
마침 화단에 떨어져 있는 회초리보다 좀 굵은 나무줄기를 주어,
엉덩이를 한대씩 때리면서 달래기도 하고,
윽박질르기도 하고,
5대를 때리고 달랬다.
정 못견디겠으면 내일 다시 얘기하자 하고 끝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탈영을 해버리고 말았다.

교육전에 부대생활을 몇달 했었기에,

비가 많이 와서,
계곡 물길로 이어진 울타리 밑 흙,돌들이 휩쓸려 나가 패여 보수작업한 곳을 알고,
보수한 침봉 몇개를 빼고, 구멍을 통해 탈출해서 바로 산으로 숨어버렸다.

다음날 아침에서야 발견을 했다.

하루동안 모든 중대원과 교육생이 뒷산을 뒤졌는데 못찾고,
저녁이 되었는데,
저녁에 주요지점만 경계근무를 서서 지키고 내일 다시 수색하자고 했다.

이때까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섬이라 도망갈데도 없고,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중대장도 여단장한테 보고도 안했었다.

저녁에 산에서
빠져나가 교회 목사집으로 들어가 ,

목사가
자기 강릉 집으로 전화를 해주어 상황이 끝났다.

이때 동기 아버지가
중앙정보부 강릉지부장이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마 외출할때
백령도 북포리 마을이 작아서 어디가 어딘지 파악을 했을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애 입장에서는 교회를 선택한게 현명했을 것이다

바로 다음날 아침에
헌병대에서
조사가 오고,

기합,
구타 이유로,

하사 3명
병 5명이 바로 2주간 영창을 갔다.

얘들은
체력훈련기간에 기합등 가혹행위 했다고 한 조교들이었다.

중사이상은 처벌을 안받았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후
동기 동생은
영창을 간게 아니고,
대청부대 주계병으로
전출을 갔다.

동기한테
전화로 미안하다하고 사과를 하고,
89년도에 휴가갔을때 포항까지 가서 술한잔하면서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지금부터 10년정도전에 ,
동기모임때 앞자리에 앉았었는데,
이상하게 나한테 화를 내고 시비를 걸길래,
이유를 몰랐었는데,
나중에 동생때문에 나를 혼낼려고 했다고 한다.
20년이 지났는데도 분이 안풀린다고 했다.
동생이 못견디겠다고 했는데도,
너도 때렸다메 한다.

뭐 할말이 없어서 미안하다고만 하고 말았지만 지금도 마음이 씁쓸하다.

교육방침대로 퇴교를 원하면
당연히 바로 퇴교조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후회,
그런다면 누가 힘든 훈련을 받을까하는 생각,

해병대 수색교육이 그렇게 좋은 말로만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핑계,

구타, 기합등 가혹행위로 인해 영창을 가야했던 대원들에 대한 미안함,

막대기로 엉덩이를 때렸던 미안함,

이 모든 것들이 나의 부족함이었던 슬픈 추억이다.

#탈영 #구타 #영창 #해병대수색교육